MEDIA

1월14일 새벽기도 설교문

페이지 정보

작성일 2021.01.14

본문

  • 페이스북으로 공유
  • 트위터로  공유
  • 카카오톡으로 보내기

1월14일 새벽기도 설교문

찬송 95장

요한복음1장19-28절

 

오늘 본문 19절을 보면 열심히 사역하던 세례요한에게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찾아와서 질문을 합니다. 그들은 왜 요한에게 찾아왔을까요? 세례요한은 당시의 유명인사였습니다. 그는 광야에서 죄 사함을 선포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회개하며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를 주목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요한이 누구길래 하나님의 권위인 죄사함을 언급한다는 말인가?”하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유대인의 산헤드린 공의회는 급히 그를 종교적으로 조사를 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제사장과 레위인들을 대표단으로 요한을 공식적으로 조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들은 요한에게 19절 말씀처럼 “네가 누구냐”하고 공식적인 질문을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네가 누구냐”라고 질문은 간단한 것 같지만, 더 정확하게는 “어떤 사람이기에 이런 일을 하느냐”하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결코 쉬운 질문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세례요한은 그 보다 더 중요한 상황에서 무엇이라고 대답했을까요? 요한의 답변을 보면 특이합니다. 제사장들은 요한이 누군지 궁금하여 질문을 했는데 자신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에 집중하지 않는 것처럼 들립니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말하면서도 자신을 특별히 자신을 나타내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요한은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20절을 보면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 대”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이 중요한 상황의 질문에서 자신이 누군지 말하지 않고, “그리스도 아님”을 먼저 말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당시의 유대인들은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요한을 보면서 메시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유대인 대표단도 이 부분이 가장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그들에게 대답을 하면서도 자신을 그리스도, 즉 메시아로 오해하지 않도록 분명히 한 것입니다. 그런데 대표단은 더 대답을 듣길 원했습니다. 공식적인 답을 가지고 돌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시 누군지 묻습니다. 그러자 요한은 23절에서 자신은 “이사야에서 예언된 주의 길을 곧게 하는 광야의 외치는 소리”라고 했습니다. 다른 말로 해보면 자신 이후에 진짜 주님, 메시야가 올 것을 암시하는 말입니다. 결국 요한은 질문에 답을 하면서 지속적으로 예수님이 중심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 대표단은 다시 질문합니다. “그러면 당신이 그리스도 아니고, 엘리야도 선지자도 아닌데, 왜 세례를 베푸는가?”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26절에 “요한이 대답하되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라고 합니다. 이는 유대인들 가운데 바로 메시아, 즉 예수님이 평범하게 살고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요한은 그들의 질문에서 다시 초점을 예수님에게 맞추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하면서 자신과의 관계까지 답을 합니다. 27절에 “내 뒤에 오시는 그 분의 신발끈도 나는 감당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신발 끈을 묶어주는 일은 가장 비천한 종들이 하는 일이었습니다. 요한은 자신이 사역을 하면서 지금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지만, 결국 자신이 사람에게 주목을 받고 많은 일을 하는 것 같지만, 예수님 앞에서 낮은 자이며, 예수님께서 최고의 높임을 받을 분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을 위해서 준비하는 일임을 강조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요한의 대답이 당연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참 대단한 대답입니다. 당시의 상황으로 볼 때, 요한은 사람들이 메시야로 오해해서든, 아니면 어떤 이유에서든 유명인사가 되고, 더욱 전국적으로 지지를 받는 종교지도자가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요한이 마음만 먹는다면 그럴듯하게 이야기하면서 사람들의 지지도 얻고, 높임도 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례요한은 그분의 영광을 조금도 취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님 앞에서 낮은 자이며, 오직 예수님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유대인들의 “네가 누구냐?”라는 질문 앞에 오직 예수님과의 관계 가운데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밝히는 말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처럼 오늘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든 예수님과의 관계 속에서 정체성이 정립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업도, 교회의 봉사도, 모두 주님 앞에서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는 종교생활에서만 중심이 아닙니다. 성도는 존재 자체가 예수님이 기준이며, 우리의 고백은 “우리의 살아가는 목적자체가 주님이십니다.”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를 살아도 주님 앞에서 우리를 돌아봅시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순간의 의미를 주님 안에서 생각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길 축복합니다.

 

기도: 오늘 하루도 주님과의 관계를 돌아보며 살게 하소서. 모든 것을 주님 영광 위하여 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