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A

1월 10일 새벽기도 설교문

페이지 정보

작성일 2021.01.10

본문

  • 페이스북으로 공유
  • 트위터로  공유
  • 카카오톡으로 보내기

고통받는 형제를 만났을 때

욥기 15:17-35

찬송가 528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욥은 절망에 빠져 탄식함으로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그가 당한 고난이 너무나 힘겨워 어떤 희망도 기대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런 욥에 대한 엘리바스의 항변과 정죄의 말입니다. 욥을 대하는 엘리바스의 말에서 고통받는 형제를 어떻게 대할 것인지를 배울 수 있기 바랍니다.

 

1. 객관적인 것이 모든 상황에서 옳은 것은 아닙니다.

  엘리바스는 욥이 당한 일을 매우 객관적이고 냉철한 태도로 바라보며, 일반적인 지혜를 적용하였습니다. 엘리바스는 악인은 고통을 받고 허무하게 될 것이라 말합니다(20-24). 엘리바스의 말은 내용에 있어 틀림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가진 지혜에 근거할 때, 그의 눈으로 목격한 욥의 상황은 악인이 당하게 되는 패망과 매우 유사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욥이 하나님 앞에 범죄함으로 고통에 처한 것이라 결론을 짓습니다. 일면 논리적이고, 매우 객관적여 보입니다. 하지만 엘리바스가 간과한 것이 있습니다. 욥의 고통은 하나님께 대적한 결과가 아니며, 욥의 입장에서는 까닭 없이일어난 일이라는 것입니다. 엘리바스에게는 전수된 지혜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욥을 의롭다 하신 것과, 그런 욥이 범죄와 관계없이 고통에 처한 것은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놀랍습니다. 하나님은 때로는 우리의 생각과 다른 방법으로 일하기도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지혜로 세상의 모든 일을 결론 짓고, 단정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우리의 판단을 유보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겸손이 필요합니다. 고통받는 형제를 만났을 때 객관적인 판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넘어, 하나님의 뜻과 일하심을 살피고 구하기 바랍니다.

 

2. 형제 위로하는 말을 하십시오.

  엘리바스는 욥을 교만한 자로, 하나님께 대적한 악인으로 호도합니다. 그의 객관적인 판단에 의하면 욥은 하나님께 범죄했는데, 그런 욥이 탄식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엘리바스는 욥을 질책하며, 상처주는 말을 합니다. 그런데 엘리바스가 욥에게 상처주기 위해 찾아갔습니까? 결코 그런 의도로 찾아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욥을 위로하기 위해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대화가 거듭될수록 방문의 목적은 퇴색되어갑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일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신명기 29:29). 고통받는 형제에게 필요한 것은 그의 상황을 해석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위로입니다. 욥과 같이 까닭 없이고통을 마주한 형제를 만났을 때 먼저 그의 상황을 살피고, 그의 아픔에 공감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엘리바스는 우리가 빠지기 쉬운 오류를 잘 보여주며 반면교사가 됩니다. 엘리바스는 욥을 음해하거나 공개적으로 비난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말은 슬픔과 고통 속에 있는 욥을 더 큰 괴로움과 고통으로 이끌었습니다. 고통에 처하여 힘들어하는 형제에게 필요한 것은 정확한 진단이 아니라 위로하는 말입니다. 바울 사도는 교회를 향해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12:16). 형제를 위로하고, 기도함으로 겸손히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제목>

섣부른 판단이 아닌 위로함으로 형제와 함께하는 공동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