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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5일 / 너는 겨울 전에 어서 오라
디모데후서 4:19-22

   사도 바울은 노년에 로마의 중앙교도소 뇌옥에서 사랑하는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마지막 편지를 보내며 친필로 문안합니다.  특별히 과거에 그와 함께 복음 증언을 위하여 고난을 받았던 귀한 복음의 동지들에게 문안과 기도를 보냅니다.  먼저 브리스가와 아굴라를 떠올립니다.  로마에서 알게 된 그들은 복음 전도를 본업으로, 생업을 부업으로 하며 함께 동고동락해 온 집사인데 그 이름에 문안합니다.  복음 전도는 이렇게 교회적이며 개인적인 부탁으로 연면히 계속됩니다.  나는 죽더라도 이렇게 신실한 부부가 이 세상에 남아 있으니 안심이 된다는 것입니다. “당신들이 나의 정신, 나의 바통을 이어 받아서 이 복음을 전해 주시오”  오네시보로는 바울의 1차 전도여행 때 회심한 노예입니다.  그는 이미 죽었고 그 유가족들에게 고인이 생전에 복음전도자 바울에게 베푼 후의를 기억한다고 문안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은 죽지만 그가 살아생전에 복음을 위하여 행한 일들은 영원히 그의 기념이 됩니다.

   고린도 성의 재무관 에라스도는 교회의 복잡한 회계업무에 충성한 사람입니다.  그가 평소에 바울에게 베풀어준 편의에 대하여 사도는 고개를 끄떡이며 가슴에 저미는 감사의 정을 나타냅니다.  드로비모는 에베소 교회의 구제금을 가지고 바울을 따라 예루살렘까지 동행한(행 19:4, 21:29) 사람인데 그가 작금 병들어 있는 것이 너무 가슴 아팠습니다.  그가 병든 것이 마치 자신이 병든 것처럼 마음에 기도의 제목이 되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딤후 1:15에 이렇게 기록합니다.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 일을 네가 아나니 그 중에는 부겔로와 허모게네도 있느니라 내가 신임하던 그들이 나를 버렸느니라 데마는 세상을 사랑하여 갔고”  노 사도의 마음이 슬픔과 고통에 억눌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교회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면 절대로 교회를 흔들지 마십시오.  소자를 실족하게 하거나 지도자들에게 상처를 주지 마십시오.  사랑과 관심의 대상이었던 사람, 기대와 촉망을 받던 사람이 배신할 때 상처가 더 큽니다.

   그들은 모두 “난 몰라”하면서 나를 버리고 갔다, 복음 전도의 사역을 팽개치고 세상으로 가버렸다, 그런데 당신들은 눈물겹게도 끝까지 내 곁에서 나와 함께 복음 증언의 고난에 동참하고 있으니 너무나 고맙고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제직 여러분, 틈틈이 교회에 들리십시오.  교회당을 살펴보시고 “뭘 도울 것이 없을까?”라고 물으십시오.  청년 여러분, 아버지의 집에 머물기를 좋아하십시오.  예수님이 말씀하셨지요. “내가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 모르시나이까?”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우리에게 남는 것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주를 위하여 일하다가 갇히고 오해받은 것입니다.  교회를 위하여 수고롭게 일하다가 늙고 병든 것입니다.  때로는 억지로, 때로는 괴롭게, 때로는 외롭게 주의 교회를 위해 봉사한 그것을 하나님께서 언제까지나 기억하십니다.  

   문안을 한 다음 바울 사도는 디모데에게 개인적인 부탁을 합니다. “너는 겨울 전에 어서 내게로 오라”  그는 죽기 전에 디모데를 보고 싶었습니다.  그에게 주의 일을 부탁하고 싶었습니다.  디모데는 겨울이 오기 전, 항해가 곤란하기 전 배를 타고 로마 옥으로 가기로 작정했습니다.  더욱이나 습기가 가득하고 음산한 냄새로 찌든 감옥에 갇힌 노 사도의 노쇠한 몸을 위하여 두꺼운 외투를 가져가는 주밀한 정성을 보였습니다.  감옥에서 부르고 감옥으로 달려가는 노 사도와 젊은 교역자의 아름다운 정경을 보십시오.  감옥도 자유도 주를 위하여 넘나들었습니다.  조금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거기에서 그들은 복음 전도의 계승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기독교 언론매체마다 떠드는 교회갱신의 싸구려 이론이 아니라 선교 일선의 치열한 전략에 대해 숙의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의 위로를 받으며 죽었고 디모데는 바울의 유업을 계승하는 깊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너는 겨울 전에 어서 오라” 우리는 이 바울의 친필 속에서 바울의 조급해하는 마음을 보는 듯합니다.  이미 순교할 각오가 되어 있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신실한 이들에게 부탁해야 하겠다는(딤후 2:2) 뜨거운 그 마음 말입니다.

   이 겨울은 첫째, 계절의 변화를 상기케 합니다.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옵니다.  겨울이 되면 왕래가 불편하고 전도도 힘들어집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 좋은 날씨, 좋은 기회에 복음을 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12월부터 긴 겨울잠에 들기 전에 가장 효과적인 전도의 결실을 맺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큰 교회당을 선물로 받은 우리가 속절없이 겨울을 맞아서야 되겠습니까?  조금 부담스럽고 열매가 많지 않아도 소그룹 복음 전도를 계속 지향하십시오.  겨울이 오기 전에 영생하는 이삭을 거두어드리는 거룩한 기쁨을 맛보십시오.  저는 목양 40년을 통해 두 가지 값진 진리를 배웠습니다.  하나는, 기도는 하나님 앞에 항상 살아 있다는 것이요 또 하나는, 목회도 인생도 하나님께서 맡기신 숭고한 임무라는 것입니다.  겔 10장에서 하나님이 생물이라 그룹이라 이름하는 불타는 전차를 타고 이동하신 것처럼, 믿음은 기도라 이름하는 무적의 전차를 타고 진격합니다. “이 세상 모든 것 사라져도 기도는 영원히 기도는 살리라 기도는 영원히 죽지 않네”  이 세상에서 치열한 기도의 밀당보다 무서운 것은 없습니다.  돌이켜보면 이 두 가지를 배운 지난 세월은 제게 충분히 만족스러웠습니다.  우리 공동체 안에서 경험한 여러분의 넘치는 사랑에 대하여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그 추억만으로도 우리 가족은 너무너무 행복할 것입니다.  저는 제 이임사를 솔로몬이 성전 봉헌식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한 왕상 8:59-60의 말씀으로 갈음하겠습니다. “여호와 앞에서 내가 간구한 이 말씀이 주야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가까이 있게 하시옵고 또 주의 종의 일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일을 날마다 필요한 대로 돌아보사 이에 세상 만민에게 여호와께서만 하나님이시고 그 외에는 없는 줄을 알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할렐루야!

   이 겨울은 둘째, 개인의 종말을 상기시켜 줍니다.  사도는 20여 성상을 복음을 위하여 전력투구했습니다.  이제 그는 겨울을 향해 역마차를 타야만 했습니다.  딤후 4:13에 바울이 부탁합니다.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겉옷과 가죽 종이에 쓴 책은 말씀의 신실한 교육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디모데에게 이를테면 가죽 성경을 유물로 그에게 전달하며 이렇게 부탁합니다. “너도 곧 겨울을 향해 마지막 마차를 타게 될 것이다. 겨울 전에 네 주님을 위하여 두꺼운 책을 열고 읽고 가르치기를 쉬지 말라. 기회는 항상 있는 것이 아니니 성경이 말씀하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를 사로잡게 하라”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을 읽을 때 조금 안 것 가지고 자꾸 사람들을 가르치려고 들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알고 있는 정도는 옛날부터 선배들도 다 알고 있던 것들입니다.  남을 가르치려고 들기 전에 먼저 자신을 가르치고 먼저 자신이 은혜를 받으십시오.  깊은 은혜 속으로 들어가십시오.  그러면 남에게 할 말이 별로 없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변해야 합니다.  내가 먼저 성령으로 변하면 이웃도 가족도 서서히 성령으로 변해갈 것입니다.  

   이 겨울은 셋째, 세계의 종말을 상기케 해 줍니다.  모두가 쉴 때가옵니다.  심는 것도 거두는 것도 모두가 중지될 때가옵니다.  세계는 종말을 향해 치닫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종말을 대망하고, 그 종말을 준비하는 자들입니다.  마 24:14에 예수님이 말씀하셨지요.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교회의 최고 관심사는 세계선교입니다.  예전에 교회 홈페이지를 보고 놀란 것은 “119 세계선교”에 접속한 사람 수는 열 손가락 안에 드는데 비해 쓰잘 데 없는 논쟁에는 수십 명씩 조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 수준의 이론 가지고 교회가 새롭게 되고 사람의 생각이 바뀌는 줄 아신다면 오산입니다.  기껏해야 비난하고 따지고, 감정 상하게 하고, 화풀이하는 정도의 글 가지고 덕을 세우고 사람을 감화시킬 수 있을까요? 천만에요.  인간의 합리 위에 성령이 임해야 합니다.  이성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성령의 은혜만이 사람의 지성과 감수성을 사로잡아 하나님의 권위 앞에 복종하게 만듭니다.  

   종말의 주님은 예수님이시고 그분만이 인생을 구원하십니다.  그분에게만 죽지 않음이 있고 영원한 생명과 영광의 상급이 있습니다.  늙은 바울은 새 시대의 일꾼이 될 청년 디모데에게 부탁합니다. “디모데야 너는 종말의 파수꾼이다. 아침도 오나니 밤도 오리라(사 21:12) 세계의 종말이 오기 전에 너는 선지자의 사역을 성실하게 감당해야 한다. 구역장이 되고, 순장이 되고, 교사가 되어라(딤후 1:11). 세계는 변할 것이다. 그러나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 역사의 계승자가 될 것이다(딤전 6:12) 세계 종말의 겨울이 오기 전에 너는 종말을 준비하는 자가 돼야 한다. 종말의 주님은 네가 행한 대로 갚으실 것이다. 주의 나라를 위해 당한 고통과 번민의 날 수대로와 주의 교회를 위해 흘린 네 눈물을 주의 병에 담아서(시편 56:8) 넘치도록 채워주시리라”

   바울은 고전 7:29-31에서 결혼생활에서의 종말론적인 삶에 대하여 이렇게 언급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그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  가정생활에서 종말론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 유의할 세 가지 측면을 제시했는데 첫째는 아내와의 관계 즉 존재의 무거움에 대한 것이요, 둘째는 아내와 연관된 자신의 감정에 대한 것이요, 셋째는 아내와 연관된 소유에 관한 삶입니다.  남편과 아내는 가정을 이룬 사람이 마땅히 져야 하는 책임에 충실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부부로 맺어진 사람들 사이의 기본적인 욕구조차도 때로는 주님을 섬기기 위하여 절제해야 합니다.  종말론적인 삶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 봉사하는 큰 목적을 위해 아내 없는 자 같이 희생을 감수합니다.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는 자 같이 하라”고 하심은 슬픔이나 기쁨의 감정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 하는 삶을 지적한 것입니다.  기쁨이나 슬픔은 세상의 환경과 여건에서 비롯되는 바 그 세상의 외형은 지나가며 새 세계가 도래할 것을 알고 믿는 성도는 영원한 것에 소망을 두고 환경을 초월해야 합니다.  세상이 주는 기쁨이 상황의 변화에 따라 큰 실망으로 변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사람이 가장 행복한 순간에 가장 불안해지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그 행복이 곧 사라질 운명 속에 있다는 것을 미래 상황으로 미리 연상하기 때문입니다.  남성들은 아내로 인하여 울 일이 있어도 이를 좀 접어두고 삽시다.  아내로 인하여 기뻐할 일이 있어도 이것 또한 접어두고 삽시다.  한 마디로 감정의 노예 됨에서 자유 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누구나 자기 소유를 증대시키고 능력을 따라 소비할 자유가 있습니다.  돈을 잘 벌면 아내가 얼마나 기뻐합니까?  그런가 하면 사업하다가 팔지 못하고 남은 물건 때문에 얼마나 속이 상합니까?  물건을 팔면 기뻐할 아내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다가 하나님의 나라를 잊어버립니다.  자기가 다 쓰지 못하는 물건이 아깝다고 집착하다 보면 자기도 몰래 주님을 잊어버립니다.  주님보다 세상을 더 우선시하는 것은 종말을 사는 신자의 합당한 자세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정의로운 경제 소득은 물론, 검소하게 소비하면서 그분이 요구하시는 대로 무언가 이웃을 위해 공헌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눅 12:20에서 풍성한 소득이 자기 미래를 평안히 지내도록 보장하는 줄 알고 만족해하는 부자의 어리석음을 지적합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종말론적인 삶은 역사의 종말과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고집할 내 것이 아무것도 없는 존재로 항상 하나님의 주권 앞에서 무기력한 자신을 긍정하고 수용합니다.  한 마디로 소유의 노예 됨에서 자유 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 세상에서 무거운 짐 진 것 같이 탄식하며 삽니다.  여행을 며칠하고 나면 온 몸이 피곤하고 지치는 것처럼 이 땅은 우리의 영구한 도성이 아니기 때문에 나그네와 행인으로서의 고달픔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기류자요 방랑자로서 종말론적인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이 땅과 이 장막에 머무는 동안 복음보다 앞세우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 세상 형적은 지나가고 주 예수의 나라가 다가옵니다.  우리는 오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그 나라에 합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권고합니다. “파수꾼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냐 파수꾼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냐 파수꾼이 이르되 아침이 오나니 밤도 오리라 네가 물으려거든 물어라 너희는 돌아올지니라”(사 21:11-12).  바울 사도도 권면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엡 5:15-16).

   어린 아이들이 소꿉장난하다가 저녁때가 되어 어머니가 부르면 소꿉을 버려두고 집으로 돌아가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인생의 겨울이 오면 우리는 모두 세상을 버려두고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겨울이 오기 전에, 계절이 변하기 전에, 겉옷을 입고 부지런히 복음을 전합시다.  겨울이 오기 전에, 나의 종말이 임하기 전에, 두꺼운 성경을 펴서 떠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순종하기 위해서 말씀을 깊숙이 공부합시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은 논쟁의 사람이 아니라 말씀의 사람입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 심판의 주님이 오시기 전에,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며 흑암을 밝히는 파수꾼이 됩시다.  21세기 한국교회, 송도제일교회의 디모데이신 성도 여러분, 청년 여러분, 이사야 선지자가 외칩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사 40:3).  바울 사도가 요청합니다. “너는 겨울 전에 어서 내게로 오라!”  찬 330장, “어둔 밤 쉬 되리니”를 다같이 부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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