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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07일 /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출애굽기 14:10-14

   모든 인간은 하나님이 통치하는 세계 속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단순한 사실을 망각함으로써 당하는 화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하나님이 세우신 세계질서를 통하여 가장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보십시오.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세계는 엄격한 질서의 세계입니다.  모든 일에는 질서정연한 조합이 있습니다.  이 자연세계에 돌연변이가 일어나면 연쇄적인 부작용이 발생합니다.  병적인 현상이 나타나고 마침내 그 부분의 죽음, 종말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잉카마야 문명의 몰락과 남태평양 이스터 섬의 폐허를 보십시오.  또 악성 암의 발호를 보십시오.  인간사회도 그와 같습니다.  사회에 세우신 하나님의 질서가 무너지면 윤상을 범하게 됩니다.  사회도 가정도 무너집니다.  무질서와 혼란은 드디어 공동체의 종말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인간사회의 모든 부분이 엄격한 질서로 유지됩니다.  전 7:24입니다.  “이미 있는 것은 멀고 또 깊고 깊도다 누가 능히 통달하랴”  경제부문에도 하나님의 질서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수학적인 엄정함이 그 세계의 특징입니다.  부도 하나님이 주시는 것인데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는 부를 탐하면 죄를 짓게 됩니다.  경제질서를 무시하면 경제사범이 되고 물질에 불의한 사람은 부정직한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과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공동체 전체에 고통을 안겨줍니다.  경제위기는 대부분 경제의 거품 현상에서 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을 살 때 자기의 분수를 알고 정직한 떡을 먹고 깨끗한 물을 마시고 살아야 합니다.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낫습니다(잠 15:17).  하나님이 주시지 않는 것, 허락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자기 분수를 지키고 만족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과학의 세계도 그렇습니다.  학문의 세계도 하나님께서 주권을 가지고 다스리는 세계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사람에게는 많은 능력을 주시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더 깊은 세계를 보여주십니다.  엄격한 서열이 그 세계의 특징입니다.  사람은 모든 부분에서 잘할 수 없습니다.  영어도 잘하고 수학도 잘하는 사람은 특수한 사람이지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과학을 잘하는 사람은 사회과목을 잘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과학을 잘하는 사람 몇몇이 그 부분을 이끌어 가면 됩니다.  어학을 잘하는 사람은 또 그 부분을 이끌고 가면 됩니다.  그 뿐만 아니라 어떤 부분을 연구하든지 그 연구가 잘될 때가 있는가 하면 잘 안될 때가 있습니다.  학문의 세계도 하나님이 열어주셔야 열리는 세계입니다.  공부 잘하는 사람은 그 부분에 은사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누구에게나 공부 잘할 것을 요구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소질을 따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인정하고 그 명령에 순종하며 사는 것이 귀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계만민 가운데 가장 잘살기 위해 부름을 받은 민족이 아닙니다.  강대한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소명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참된 종교, 진정한 예배와 경건한 삶이 무엇인가를 세계에 보여주기 위하여 선택함을 받은 백성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가장 선명하게 말씀합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사 43:21).  찬양이란 음악이나 예배 이전에 하나님께 대한 태도 전반을 의미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는 백성’ 그것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우리들을 구원하신 목적입니다.  그런데 그 이스라엘 백성이 어려움에 직면합니다.  앞에는 바닷가로 밀어닥치는 홍해의 파도가 있고 뒤에는 대오를 편성하여 물밀듯이 밀어닥치는 이집트의 군세가 있습니다.  진퇴양난의 절벽을 만난 것입니다.  사람은 어려운 고비를 만나봐야 그 본성이 들어납니다.  그만 그 백성들의 입에서 원망이 쏟아지고 비교감정이 노출됩니다.

   요컨대 이스라엘 백성이나 세상 사람이나 조금도 차이가 없었습니다.  오직 자기 욕심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찬송하며 죽기보다는 이집트에서 고기 먹고 살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기보다는 이집트 사람을 섬기겠다고 후회하고 원망합니다.  하나님을 자기 욕정으로 바꾸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엄청난 모욕을 그의 백성으로부터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비교의 대상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단지 그들의 정욕에 계속 만족을 주지 않고, 기대치가 어긋났다는 이유만으로 하나님께 마구 떼를 씁니다.  “우리가 자식들과 함께 이 광야에서 죽는 것은 너무 억울합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한번 잘 살아 보겠다고 소망했는데 그 희망이 산산히 깨어졌다는 것입니다.  이들의 욕구는 얼마나 원시적입니까?  얼마나 맹목적이며 동물적입니까?  그들은 지금 다른 생각을 할 여유를 갖지 못합니다.  무엇이 선한 일인지, 의미가 있는 일인지 판단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기도 싫었습니다.  모든 것을 팽개쳐 버립니다.  구원의 목적을 깡그리 잊어버렸습니다.

   그러자 천국의 기쁨이 사라졌습니다.  보이는 것은 죽음에 대한 공포, 그리고 믿음을 배신한 불안, 심판에 대한 예감 등으로 그들의 심령이 녹아내립니다.  고달픕니다.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이 보잘 것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취급하십니까?  하나님은 그들을 싫어버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에게서 희망을 거두어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가르치고 훈련시켜 다시 당신의 백성 삼으시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하나님은 한번 선택한 백성을 영원히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이집트 백성과 조금도 다를 것 없는 백성이지만 이집트의 군대와 백성들을 다 죽여서라도 그들을 구원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얼마나 인자하고 황공스런 말씀입니까?  이 하나님의 말씀 중에 가장 강조된 말씀이 ‘가만히 있으라’는 말씀입니다.  ‘너희는 가만히 있으라’ 이 말씀 속에는 몇 가지 소극적인 명령이 담겨 있습니다.  

   첫째, 더 이상 욕심 따라 움직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욕심 따라 이 세상을 살게 되면 결국 우상 숭배자가 되고 맙니다.  성경에서 ‘탐심은 우상 숭배’(골 3:5)라고 했습니다.  자기 배를 신으로 섬기고 있는데 하나님이 상관할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탐욕의 결과로 얻은 것이 무엇입니까?  영혼은 파리해졌고 육신은 고기를 입에 문 채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었습니다.  그래서 그곳 이름을 탐욕의 무덤이라고 불렀습니다(민 11:33-34).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일생을 이렇게 마쳐야 되겠습니까?  ‘탐하고 탐하다가 탐욕의 구덩이에 묻혔다’ 기브롯 핫다아와, 저 북망산에 있는 탐욕의 무덤들을 보십시오.  무덤에서야 그 탐욕이 끝났습니다.  얼마나 비극적입니까?  더욱이나 신자로써 얼마나 부끄러운 죽음입니까?  우리의 일생을 주님 섬기는 데 바칩시다.  언제나 찬송을 그치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 위해 동분서주하다가 ‘이제 내 육체는 무덤 속에서, 이 땅 위에 있는 거룩한 그루터기로서 주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노라’ 이런 무덤, 이런 죽음을 남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나를 움직이는 동인, 다이나믹이 무엇입니까?  무엇이 지금 나를 충동질하고 있습니까?  육체의 소욕입니까, 성령의 소욕입니까?  육체의 소욕대로 살면 반드시 죽습니다.  부끄러운 열매 밖에 맺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육체의 소욕을 이기면, 생명과 평안과 진정한 행복을 거둡니다.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산 세월은 지난 때가 족하지 않습니까?  이제 남은 육체의 때를 성령의 소욕 따라 살아갑시다.  광야에서 받은 상처 따라 살지 말고, 군중심리 따라 설치지 맙시다.  세상 명예, 세상 자랑, 세상 재미를 멀리합시다.  광야에서 잘살지 못해 포은지지 말고, 광야에서 모든 것을 되찾고 회복하려 들지 말고, 하루하루를 말씀 따라 살아갑시다.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하여 말씀 따라 달려갑시다.  나를 움직이는 동인, 다이나믹은 오직 말씀이라고 고백할 수 있게 삽시다.  성경읽기에서 말씀묵상으로 나아갑시다.  “하나님께서 가라 하시면 어디든지 가겠습니다. 하나님이 하라 하시면 무엇이든지 하겠습니다”  위기의 순간에 갈렙이 외쳤지요.  “이 광야의 길을 말씀 따라 45년을 살았더니 이제도 나에게 힘이 넘칩니다. 더 어려운 일도 감당할 수 있사온즉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수 14:6-15).  갈렙 같은 신앙의 용장이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 더 이상 정욕 따라 기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정욕 따라 사는 것이 행동이라면, 정욕 따라 구하는 것은 마음의 경향성입니다.  정욕 따라 사는 것도 중단해야 하지만 정욕  따라 구하는 것도 중단해야 합니다.  행동뿐만 아니라 마음의 생각까지 정욕의 얼개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사람이 왜 밤낮으로 복을 구하고 세상 만족을 구하는데 받지 못합니까?  야고보 사도가 정확하게 지적합니다.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약 4:2-3).  내가 구하는 것이 정욕인지 아닌지 어찌 구별합니까?  내가 구하는 것에 의심이 나면 정욕으로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구하는 것은 평안과 확신과 담대함을 줍니다.  그러나 정욕으로 구하면 왠지 마음이 불안하고 의심이 생기고 출렁이는 물결처럼 이랬다저랬다 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약 1:6-8).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물결 위에 귀한 것이 있다고 합시다.  그것을 어떻게 붙잡을 수 있습니까?  물결 위에 던져진 물먹은 것들이 어째 내게 유익한 것이 되겠습니까?  우리는 구할 것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구하고, 내게 꼭 필요한 것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시는 것은 포기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내게 꼭 맞지 아니한 것은 거부할 줄 알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도하는 가운데 정욕 따라 구하는 것과 성령 따라 구하는 것을 구별하십시오.  분간하십시오.  세상 따라 구하는 것은 뒤로 돌리시고 말씀 따라 구하는 것을 앞장 세우십시오.  필수적인 것과 선택적인 것을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의 생각, 개똥 철학의 주장이 바꾸어질 때 하나님은 당신의 구원을 여러분에게 나타내실 것입니다.

   셋째, 강한 확신을 가지고 그 상황 속에서 끝까지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이 당한 상황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조성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의도적으로 만드신 상황입니다.  하나님은 이 상황을 장악하시고 그 가운데서 강한 이집트 사람을 수장하시고 약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사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계획을 이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안달이 나서 견디지 못합니다.  인생이 완결을 위해, 영생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믿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가장 간단한 명령을 발하셨습니다.  “기다려라 가만히 있으라 내가 이집트인을 수장시키고 내가 너희를 대신하여 나의 원수와 싸우리라. 너희가 어설프게 설치면 도리어 방해가 되고 사로잡히게 된다. 내 말을 듣지 않고 움직이면 위험하다. ‘이제 우리가 걸어가는 것을 그들이 에워싸서 노려보고 땅에 넘어뜨리려 하나이다 그는 그 움킨 것을 찢으려 하는 사자 같으며 은밀한 곳에 엎드린 젊은 사자와 같으니이다’(시 17:11-12) 조심하라 오히려 하나님께 복종하고 숨어있는 것이 너희의 지혜요 평안이니라”

   가만있지 못하는 것이 불신과 정욕의 현저한 특징입니다.  정욕 따라 사는 사람은 기다리지 못합니다.  그 속에 있는 정욕이 쉬지 않고 계속적으로 강렬하게 무언가를 끊임없이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보통사람은 자기와 하나님 사이에 여러 가지 사정을 둡니다.  그러므로 그의 생각이 복잡하고 행동이 갈팡질팡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자기와 사정 사이에 하나님 한 분만 둡니다.  그러므로 그는 상황 따라 움직이지 않고 말씀 따라 단순하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려운 일을 당할 때 기도하기보다 원망하기 쉽습니다.  기다리기보다는 행동하기가 쉽습니다.  마틴 루터가 권면합니다.  ‘말씀보다 앞서지 말라, 기도보다 앞서지 말라, 성령보다 앞서지 말라’  우리는 쉬운 길로 가서는 안 됩니다.  어려운 길, 좁은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정욕을 거부하고, 하나님이 하실 일과 내가 할 일을 구분해야 합니다.  내가 할 일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가만히 있는 것이고, 하나님이 하실 일은 백성들을 지키시고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할 일은 하나님이 행하시는 것을 조용한 마음으로 지켜보는 것이고, 하나님이 하실 일은 우리 위해 싸워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까지, 하나님이 나를 위해 싸우실 때까지 우리는 잠자코 기다려야 합니다.  끝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10년이라도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 역사의 파수꾼이지 주인공이 아닙니다.  우리는 싸움꾼이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펼치시는 구원 무대의 관중입니다.  생생한 구원역사의 산 증인입니다.  하나님이 이사야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사 말씀하십니다.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 아니냐”(사 30:15).  우리가 어려운 상황을 맞아서 제일 먼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다만,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우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는 것임을 잊지 마십시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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