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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4일 /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시편 27:4

   여러분의 진지한 기도의 실제적인 내용은 무엇입니까?  본문은 다윗의 진지한 기도의 내용입니다.  다윗은 지나간 때도, 장차 도래할 때를 위해서도 이 한 가지 일을 청하였습니다.  그 한 가지 일은 모든 성도들이 오랫동안 요청해온 일이었으며 또 그것을 얻게 되기까지 줄곧 올릴 청원이기도 합니다.  다윗이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이 무엇입니까?  땅 위에 살았던, 또는 살고 있는 모든 성도들이 청해온 한 가지 일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셋이면서 하나입니다.  첫째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사는 것이며, 둘째 그곳에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것이며, 셋째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입니다.  다윗은 연말을 맞아서 피로한 영혼과 육신이 쉴 수 있는 휴식과 안정을 소원하지 않았습니다.  새해를 맞으며 반짝이는 새로운 소원을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단순하고 열렬하게, 지속적이고 집중적으로 한 가지 일을 구하였습니다.  이 세상에서도 분산된 목표는 혼란과 쇠약함과 실망을 야기하지 않습니까?  다윗은 한 가지 규례를 늘 따랐으며 그 한 가지 목표를 추구했기 때문에 성공한 사람입니다.  우리의 모든 애정이 단 하나의 대상에로 결집될 때, 그 애착이 하늘에 속한 것들에 고정될 때, 그 사람은 두각을 나타냅니다.  영적인 승리자가 되고 차세대의 지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필수적인 한 가지 일을 구했습니다.  더 나은 한 가지만을 선택했습니다(눅 10:42).  그것은 성도의 으뜸 된 덕목이며 궁극적 목적입니다.  그것은 나로 하여금 내 인생이 단 하나를 위한 것임을 느끼도록 만들어줍니다.  나에게서 세상적인 기쁨들을 가라앉히고, 인간적 슬픔들을 누그러뜨립니다.  곤경에 처한 나를 일으켜주고 연약함 가운데 처한 나를 강건하게 만들어줍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신실하고 자애로우신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윗은 하나님과의 친교와 교제를 소유했을 때 그는 더 이상 무엇을 바랄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의 영혼 속에 임하신 하나님의 임재가 너무나 감미로웠기 때문에 그것은 시인의 유일한 바람이자 그의 소원 전체가 되어버렸습니다.  “오 하나님, 당신 자신을 제게 허락하여 주소서. 그리하면 저는 더 이상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겠나이다. 새 피조물은 하나님께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며 단지 하나님을 누리나이다. 오 여호와여, 제게 이것을 허락하여 주소서.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시바로 하여금 갖게 하소서. 나는 그 한 가지 진주, 곧 천상의 부요한 은혜를 사기 위해 다른 모든 것을 나눠주겠나이다. 오 주님, 다윗이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그것을 나에게 허락해 주소서”

   다윗이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은 첫째,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집은 하나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장소입니다.  그것은 성막일 수도, 성소일 수도, 성전일 수도 있습니다.  성전 식양은 인간의 지혜에 따라 고안된 것이 아니라 신령한 것들의 이미지입니다(출 25:40).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근사한 건물이나 장식물에 현혹될 필요가 없습니다.  성전 지경을 벗어난 곳에서도 우리는 얼마든지 하나님의 귀한 약속의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신자는 기도와 성경을 통해, 예배와 찬송을 통해 나아갑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각 시대마다 가시적 교회 안에다 은총과 위로라는 당신의 모든 보물들을 쌓아두셨습니다.  특정한 목회자의 보살핌 속에 있는 특정한 가시적 교회 속에 하나님은 당신의 구원의 방편들을 골고루 갖추어 놓았습니다.  사람은 자기 집에서 쉬고 눕고 머무르지 않습니까?  집이란 그 사람의 성채요, 그의 보물을 쌓아두고, 자신의 필요한 것을 공급하며 지켜주는 곳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하나님의 집에서, 교회라고 불리우는 각기 독립적인 하나님의 교회에서 우리와의 감미로운 만남을 허락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사랑하는 자녀 사이에 영적인 입맞춤이 있는 것입니다(아 1:2).  

   다윗은 하나님과의 교제가 이루어지고 거룩한 예배가 드려지는 하나님의 성소에서 받은 은혜들을 결산해 보았습니다.  그는 여호와의 집에서 빛을 받고 힘을 얻었습니다.  생명을 얻고 구원을 체험했습니다.  지속적으로 하나님께 하사받은 영적인 수입이 엄청 많았습니다.  하나님의 관대하심과 은총, 용서와 자비라고 하는 셀 수 없는 보화가 그의 영혼 속에 빛나고 있지 않습니까?  육적인 수입은 또 얼마나 컸습니까?  “하나님은 나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구원하여 주셨고 부귀로 채워주셨습니다. 나의 창고와 지갑이 비지 않았습니다. 나의 몸에 건강을 주시고 자녀들을 후계자로 세워주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내 평생의 모든 날 동안 하나님의 집에 거할 것과 그 은총의 장소를 자손들에게 물려주기를 청했습니다.  어떤 분은 하나님의 집을 소유하고 내 마음대로 지배하기 위해 하나님의 집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그 권리증서는 우주적인 결산이 이루어지는 그 위대한 날에 아무것도 아니게 될 것이며 도리어 온 세상의 주재시며 재판장께서 그를 정죄하실 것입니다.  여호와의 전은 나를 그분께로 이끌기 위해 마련된 것이지, 나로 하여금 그분에게서 그런 것들을 취하도록 마련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로지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기를 원합니다.  여호와의 명예가 깃든 곳에 머물기를 좋아합니다.  바누엘의 딸 안나는 무려 84년 동안이나 성전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그곳에 살았다는 뜻이 아니라 종종 그곳을 찾았다는 말입니다.  하루에도 두 번씩이나 겸손한 마음으로 드나들었습니다.  돌발적으로나 변덕스럽게 나아간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정규적으로 그곳을 향했습니다.  성 어거스틴은 성전을 사랑했던 초대교회 성도들을 가리켜 하나님의 개미들이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의 개미들을 보라. 그들은 매일 일찍이 일어나 하나님의 교회로 달려가며, 거기서 기도하고 교훈을 들으며 찬양하고, 들은 바를 곰곰이 반추하며 묵상하고, 또한 하늘 창고로부터 가져온 곡식을 차곡차곡 쌓아둔다”(John Day, 1609).  “오 나의 영혼이여, 하나님의 집에서 어떤 광경을 보았던가, 무엇을 맛보았던가, 어떤 위안을 받았던가? 거기서 기도 응답을 얼마나 많이 체험했던가? 그의 말씀으로 인해 그 얼마나 큰 감명을 받았으며, 그의 상에서 받은 위안은 얼마 만큼인가? 그가 사랑의 깃발을 내 위에 세우셨도다. 설령 내가 다른 사람들만큼 많은 은택을 누릴 수 없다 하더라도, 나는 내가 찾은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억할 수밖에 없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집에 있었던 까닭이므로 나는 여전히 거기 거하기를 바란다”(Daniel Wilcoz).  할렐루야!

   다윗이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은 둘째, 그곳에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아름다움은 하나님의 본질을 목도함으로 얻는 미감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보고서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출 33:18, 20).  여호와의 아름다움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기록했지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 1:14, 16-18).  할렐루야!  율법은 사람들의 마음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런가 하면 복음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여호와의 아름다움은 복음 안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영광의 광채이자 그분의 인격을 나타내는 분명한 형상이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아버지의 선물로 여길 때, 그리고 그분의 직무와 성품을 살펴볼 때, 우리는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그분 안에서 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성품은 사람들이나 천사들이 주목하는 도덕적 아름다움 중 가장 멋진 것입니다.  세상의 아름다움은 쉽게 시들지만 여호와의 아름다움은 세상이 사라져도 존속될 것입니다. 여호와의 아름다움은 결코 속이지 않고 쇠락하지 않습니다. 여호와의 아름다움은 결코 그 힘을 잃지 않습니다. 결코 실망시키지 않습니다”(Andrew Gray).  사랑하는 여러분, 지성소로 깊이 들어가 보십시오.  그 속에 그룹이 있고, 속죄소가 있고, 언약궤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복음으로 임마누엘로 우리들에게 오셨고, 우리는 규례를 통해서 믿음으로 은혜의 방편으로 그분에게로 나아갑니다.  그러면 성령의 감화 속에 우리들의 마음이 밝아집니다.  우리의 마음의 눈에 그분의 선하심과 공의, 사랑과 자비를 계시해 주십니다.  우리는 주일예배를 통해 오늘도 자애로우신 아버지와 영화로우신 예수님 그리고 신비로우신 성령님을 더 많이 알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을 통해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만끽하십시오.  예수님의 제자들은 아름다우신 왕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무한히 복된 광경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 7:14)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 1:23)”  세상에는 숨겨진 아름다운 것들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아기 예수 속에 숨겨진 여호와의 아름다움보다 크고도 깊은 것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조건 없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저항 없이 주어졌습니다.  아낌없이, 전폭적으로 주어졌습니다.  아기 예수가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것은 죄가 없어지고 전면적인 평화가 수립되었다는 것입니다.  성탄의 축복 속에 사시기 바랍니다.  성탄의 거룩한 은혜 속에 거하시기 바랍니다.  그분이 이 땅 위에 오셨습니다.  그것은 성경에 300번이나 예언된 것입니다.  그분이 다시 이 땅 위에 오실 것입니다.  그것은 성경에 500번이나 예언된 것입니다.  성탄 사건은 연속됩니다.  성탄은 하나님의 영원한 임재를 웅변하는 사건입니다.  성탄절로부터 일 년 내내 예수님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살아가십시오.  다같이 따라 합시다.  ‘성탄이여 영원하라!’  ‘성탄이여 영원하라!’  할렐루야!

   다윗이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은 셋째,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사모한다는 것은 열심히 모인다는 것입니다.  관심을 기울이고 문의한다는 의미입니다.  사도화 훈련과정과 금요 순장대학을 통하여 성소 안으로 깊이 들어가십시오.  특히 제35회 신년사경회에 더욱 열심히 모이십시오.  송년주일 두 번의 예배와 월, 화 두 번의 새벽기도회와 저녁집회에 꼭 참석하십시오.  이 여섯 시간 속에 하나님이 여러분을 위해 예비하신 새해의 선물, 떡상과 촛대와 향단의 축복을 발견하실 것입니다.  사모한다는 것은 애착을 가지고 교회 안에 정해진 규례에 따라 그분을 앙망한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모든 행복이 완성되고 온전케 되는 천상의 장막에 이를 때까지 거듭거듭 공부하고 연습한다는 것입니다.  연구하고 훈련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좋은 소식을 사모하는 것은 흔히 헛된 공상으로 끝나지만 그의 성전에서 복된 소식을 사모하는 것은 해 아래 새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기도 합니다.  사모한다는 것은 사랑함으로 일하는 것입니다.  은혜가 적으면 할 일도 적고 은혜가 많으면 할 일도 많습니다.  더 많은 은혜를 지닐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규례들 안에서 해야 할 일을 많이 발견합니다.  

   다윗은 인사차 여호와의 집을 방문하지 않았습니다.  시인에게는 항상 하나님께 대해 해야 할 큰일과 진지한 일이 있었습니다.  다윗은 자기를 지으신 분에 의해 맡겨진 일을 완수하기 전까지는 결코 쉼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사업차 하나님의 전에 간 그는 하나님의 일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탄절은 오늘 우리에게 비치는 하늘의 한 줄기 빛만이 아닙니다.  성탄절은 우리들의 삶 속에 하나이면서 셋인 신령한 규례, 곧 하나의 통일성을 제공합니다.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겠습니다.  그것은 첫째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서 사는 것이요, 둘째 그곳에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것이며, 셋째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것입니다.  2017년 성탄절에 드리는 우리들의 간구가 2018년에도 계속 응답될 줄 믿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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