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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0일 / 내가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린도전서 15:9-11

   성도들을 향한 하나님의 제일 요구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레 11:45, 벧전 1:16)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창 17:1)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결이 신앙생활의 기초입니다.  또 우리가 은혜를 받으면 나도 몰래 성결하게 살고 싶어집니다.  성결이 하나님의 기쁨인 줄 알고 더욱 거룩해지려고 결심하게 됩니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도덕적으로 깨끗지 못하면 하나님이 낮추십니다.  아무리 훌륭한 인물도 윤리적으로 깔끔하지 못하고, 투명성이 결여되면 하나님이 물리칩니다.  그러므로 청소년 여러분은 위대한 사람이 되려고 하기 전에 먼저 선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대장이 되려면 먼저 좋은 졸병이 되어야 하고, 훌륭한 교회 직분자가 되려면 먼저 좋은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가난하고 어리고 보잘것없는 사람도 주 앞에서 깨끗하고 겸비한 인생은 반드시 하나님이 돌아보십니다.  유위한 일꾼으로 만드시고 높여주십니다.  저는 오늘 아침에 성결한 삶의 최대 방해 요소가 무엇이며 성결을 이루는 비밀이 무엇인지를 밝혀드리겠습니다.

   세상 사는 모든 사람은 날마다 죄를 경험합니다.  엡 2:1의 말씀대로 ‘우리는 모두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들’임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어겼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뒤틀어졌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그 어떤 종교적 시도도 실패하였고 바로 그 상태에서 죽었고, 죽음의 형벌 아래 버려졌습니다.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식으로 세상 풍속과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라 다녔습니다.  오늘도 죄를 먹고 마십니다.  그런데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죄과를 예수님께 전가시켰습니다.  덮어씌웠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받을 형벌과 저주를 고난에 찬 생애와 십자가의 죽음으로 다 담당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보배 피로 말미암아 구속함을 받고 새 생명을 얻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사 살려주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삶은 자유하는 삶입니다.  바울 사도가 갈 5:1,13에서 말씀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진정한 자유를 주셨습니다.  전에는 죄지을 자유밖에 없었습니다.  사람이 예수 믿고 중생하기 전에는 그가 사람들 보기에 아무리 도덕적인 선행을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는 빗살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선행은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한 것도 아니고, 하나님을 믿음으로 행한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습니까?  미운 자식에게 떡 한 개 더 준다고 여러분을 사랑하지도, 믿지도 않으면서 여러분에게 뭘 준다고 여러분이 기뻐하겠습니까?  받고 감사하겠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는 오직 믿음으로 행하고 사랑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그것만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감사의 찬양이 됩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다시 영적으로 태어난 것을 중생이라고 합니다.  영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원수에서 사랑받는 자식으로 바꾸어질 때 비로소 우리에게 자유가 주어집니다.  죄를 지을 자유 외에 선을 행할 자유를 얻습니다.  신자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며, 믿음으로 선을 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명심할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이 자유는 선택의 자유이지 능력의 자유는 아니란 것입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들이 아무리 오래 예수 믿었어도 또다시 죄지을 자유가 있습니다.  동시에 여러분은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진정한 선을 행할 수 있는 자유도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가진 자유는 ‘죄와 사망의 법을 택하느냐? 생명의 성령의 법을 택하느냐?’ 는 선택의 자유입니다.  여러분이 죄와 사망의 법을 택하면 그 법이 여러분을 범죄에서 범죄로 이끌고 갈 것입니다.  그때 여러분은 “죄를 짓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라(롬 7:17)”고 고백할 것입니다.  반대로 여러분이 생명과 성령의 법을 택하면 그 법이 여러분들을 생명에서 생명으로, 성결에서 성결로, 더욱 풍성한 은혜와 생명 가운데로 이끌고 갈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지금 두 가지 자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선하고 의롭게 살 수 있는 자유 그리고 하나님을 슬프고 아프게 하는 죄 지을 자유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이 두 가지 법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맞닥뜨립니다.  바울 사도는 이런 절실한 체험을 롬 7:20-24에서 고백합니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여러분의 개인적인 경험은 어떻습니까?  세례 받은 이래, 직분 받은 이래, 여러분은 오늘날까지 이 두 가지 자유 속에서 몸부림쳐 오지 않았습니까?  이 육체 속에 있는 나의 의지는 이 두 가지 법의 선택에 있어서 연속적인 승리를 얻지 못합니다.  번번이 판정패를 당하고 때로는 더 싸울 의욕조차 사라집니다.  거룩하게 살려면 살려 할수록 한없이 솟아나는 죄의 세력과 맞닥뜨립니다.  전에는 알지도 못하던 죄, 생각지도 못하던 가지가지의 죄가 연속적으로 내 속에서 솟구쳐 나옵니다.  그 무한히 깊은 심연 속에 잠복해 있는 죄들을 보게 될 때 나는 탄식하고 절망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낙심천만합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사 6:5).  과연 사람은 전적으로 부패했습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죄는 사람의 마음에 자리 잡고 끝없이 악한 생각을 토해 냅니다.  ‘탐식, 탐욕, 나태, 교만, 음욕, 시기, 분노, 살인, 도둑질, 거짓증거, 훼방, 미움 등등’(마 15:9).

   우리들은 수 없이 많이 결심하고 회개합니다.  많이 울고 자신을 괴롭혀 봅니다.  그러면 얼마간 선을 행하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듯하지만 그것도 초조와 불안 가운데 얼마간 진행되다가 그칩니다.  여러분은 새해마다, 생일마다, 교회의 절기마다 새롭게 자신을 타일렀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일기를 쓰신다면 성결에의 강렬한 욕망으로 얼룩져 있는 일기장을 발견하실 것입니다.  성결에의 갈망에 이끌려 여러분은 산으로 올라갔을 것이고 거기서 성경을 읽고 목이 터져라고 찬송하고 오랜 시간 기도했을 것이고 마침내 마음에 사죄의 확신을 가지고 ‘나는 거룩하게 되었다, 나는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다’는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내려 오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일주일도 못돼서 흔들립니다.  용감하고 자유로운 것 같은데 또 넘어집니다.  혼란이 옵니다.  ‘이만하면 제법 괜찮은 성도인데, 비교적 거룩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스스로 타협합니다.  ‘그저 그렇게 큰 죄 안 짓고 살면 그뿐 아닌가?’ 그러면서도 하나님 앞에서는 스스로 작아 보이고 초라해 보일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래도 내가 예수 믿는다고 소문났는데, 아이들을 가르치는 내가 이래서 되겠는가?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롬 2:24)는 말씀이 화살처럼 심장에 박힙니다.  “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은혜를 베푸소서. 성령으로 충만케 하옵소서. 원함은 내게 있으나 그것을 행할 능력이 없나이다!”

   이런 과정 가운데서 우리는 성결의 비결에 접근하게 됩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나로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 몸은 이미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므로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는  나와 함께 죄도 있고 마귀도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것들이 내게 다가오는 것은 그들의 자유이므로 내가 막을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믿음 또한 하나님의 선물인 것처럼, 거룩하게 사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이지 나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성결을 내가 성취하려고 했기 때문에, 저 로마 가톨릭의 잘못된 가르침처럼, 하나님과 사람이 협력하여 선을 행할 수 있다는 아르미니안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자기를 내세우던 모세가 넘어집니다.  온 지상에서 온유함의 제일인자가 므리바 물가에서 실패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지 않고, ‘우리가, 내가’라고 주장하다가 범죄 했던 것입니다(출 20:12).  베드로를 보십시오.  그가 연약했을 때 마귀의 장난에 넘어지고 자빠진 것만 아닙니다.  대 사도로서 만인의 추앙을 받던 때라도 외식에 빠져 형제를 미혹하고 후배 사도인 바울에게 면책을 당합니다(갈 2:11-13).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지 않을 때는 은혜의 절정에서도 실패합니다.  날개 없이 추락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결의 최대 적은 자만심입니다.  성결은 내 안에 기초할 수 없습니다.  말로도 기술로도 안 되고, 지식으로 인격으로도 안 되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고백합니다.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입니다.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입니다. 나는 여전히 죄인 중에 괴수입니다.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내게 작용할 때 나는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는 줄로 생각합니다(고후 11:5)”  그렇다면 성결의 비밀이 무엇입니까?  성결의 비밀은 하나님의 은혜 곧 예수 그리스도 자신입니다.  바울은 말씀합니다.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고전 1:30).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죽을 몸, 죄의 몸을 주장하실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거룩해집니다.  내가 아니요 하나님의 은혜로써 성결해집니다.  거룩의 열매를 맺습니다.  주 안에서 자랍니다.  성숙해집니다.  위대해집니다.  일마다 때마다 영광과 존귀를 들어냅니다.  감사와 자랑을 하나님께 돌려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성결의 두 번째 비밀은 예수의 생명에 내가 하나로 연합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하나님을 믿게 하고 거룩하게 하십니다.  나로서는 안 되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십니다.  “이르시되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눅 18:27).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므로 나로서는 할 수 없는 그것을 내 안에서 행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성결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결입니다.  나의 더러운 옷과 같은 성결, 위선이 가득한 성결, 외식하는 성결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할 수 있는 것을 예수님의 도움으로 내가 적당히 하려고 하니 어찌 성결할 수 있겠습니까?  Chales Finney가 잘 지적했습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칼빈주의자가 사실상 아르미니안주의자가 된 것과 같다”  성결의 비밀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서 결코 약하시지 않고 도리어 강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 계시니 우리도 그 안에서 약하나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와 함께 살리라”(고후 13:4).  할렐루야!  우리의 성결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매일 순간마다 나의 주인으로 모셔 들입시다.  그분을 부리는 주인이 되지 말고 그분에게 사로잡힌 종이 됩시다.  그리하면 성결은 자동적으로 내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안식 가운데 성취되는 것입니다.

   저는 ‘내가 아니요, No I’에서 큰 해방을 느꼈습니다.  죽는 순간까지 ‘주준태’는 여전히 완전한 죄인입니다.  법적으로 영적으로는 완전하고 영원한 의인이지만 육체적으로 실질적으로는 여전히 나는 죄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자신을 신뢰하지 말아야 합니다.  바울이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빌 3:3).  그가 참 예수쟁이요 진정한 크리스찬이라는 것입니다.  성결은 성령으로 성취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집니다.  이 사실을 꿈에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 다음에 우리는 성결의 수준에 대해서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 바울이 말씀합니다.  “우리는 자기를 칭찬하는 어떤 자와 더불어 감히 짝하며 비교할 수 없노라 그러나 그들이 자기로써 자기를 헤아리고 자기로써 자기를 비교하니 자혜가 없도다(고후 10:12)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빌 3:16)”  쓸데없이 사람을 성자로 만들지 맙시다.  아무 유익도 없이 남을 몹쓸 사람으로 매도하지도 맙시다.  그의 성결은 하나님이 아십니다.  우리는 그날이 오기까지 아무도 판단해선 안 됩니다.  믿음의 영웅이 많으면 좋지만 모양만 내는 영웅이 많으면 교회가 복잡해집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인간 우상을 만들 필요도 없고, 남을 낮추어서 내가 올라갈 이유도 없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한가지 사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주장하실 때 그 부활의 능력으로 나는 죽고 그분의 힘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분의 성결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갈 2:20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라고 했습니다.  나의 자만심이 깨어졌다는 것입니다.  내 자랑, 내 야망, 내 신뢰가 사라져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바울처럼 고백할 수 있습니다.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성결의 첩경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에 계시게 하는 것입니다.  “Not I, but the grace of God that was with me, 내가 행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NIV역에서는 ‘Yet Not I’라고 연결합니다.  아직도, 세상에서는 결코 나 혼자서 성결을 이룰 수 없습니다.  But the grace of God that was with me,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써 성결을 이룰 수 있습니다.  오직 그가 나의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아 심판하시고 나의 속사람을 성령의 은혜로 강건하게 해 주신다는 것, 바로 여기에 성결의 비밀이 숨 쉬고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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