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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03일 / 십자가의 참된 종교
누가복음 23:39-43

   세상에 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없는 종교는 참 종교가 아닙니다.  태초로부터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는 십자가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만 참 생명이 있고 생명이 있는 종교만이 참된 종교입니다.  십자가 없는 종교는 인간의 종교심이 만들어낸 산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말씀으로 아름답게 창조하신 다음 자기의 형상을 따라 존귀하게 창조한 아담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담아 내가 동방의 에덴에 창설한 이 아름다운 동산을 네게 주노라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열매를 많이 주노라 동산의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어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에덴동산 중앙에는 하나님의 성소가 있었습니다.  그곳에 하나님의 주권을 상징하는 선악과가 있었는데 그것은 아담에게 있어 에덴에 있는 십자가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을 무조건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의 조건을 부쳐 주셨습니다.  “너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말씀을 순종해야 한다. 너는 만물을 즐기되 그 만물을 통하여 하나님을 찬미해야 한다. 너는 생명을 누리되 그 생명을 통하여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나를 사랑하고 나와 교제하는 것이 네게 참된 생명이 된다”  이렇게 인간은 태초부터 종교 안에서, 종교를 위하여 태어난 것입니다.

   “아담아 네 삶의 목적은 하나님임을 잊어선 안 된다. 나를 사랑하고 나의 말을 순종한다면 네게 생명 나무의 열매를 주어 너로 영생하게 하마”  에덴의 십자가는 뭘까요?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은 섬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복종해야 산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사람의 제일 된 본분입니다.  Westminster 대교리문답 제1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람의 제일 되고 가장 높은 목적이 무엇입니까? 사람의 첫째 되고 가장 높은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온전히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에덴에 있던 십자가는 선악과란 금지된 열매로 표현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 아래 사람의 생명이 있고, 십자가 아래 영생이 있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야말로 진정한 생명 종교의 표호입니다.

   에덴에서 행복을 누리며 살던 아담의 배필 하와에게 사탄이 찾아왔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이 선악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사탄의 유도 신문에 하와가 제깍 걸립니다.  ‘먹으면 죽을까 하노라 하시더이다’  사탄이 걸고 넘어집니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사탄은 하나님 편이 되었다가, 사람 편이 되었다가 넘겨집기도 잘하는 존재입니다.  여자가 선악과를 보고 곰곰히 생각해 봅니다.  “이 아름다운 동산을 봐라 이렇게 행복하고 자유로우며 청춘은 날마다 새롭고 꽃은 피고 하늘은 푸른데 왜 내가 하나님의 구속을 받아야 하고 그분에게 경배해야만 하지?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데 그분을 모시지 않고, 이 보이는 세계를 내가 독차지 못할 이유가 뭘까? 도대체 그렇게 못할 이유가 뭔데?”  여자는 아담과 함께 선악과를 따먹습니다.  하나님을 배신하고 그 말씀을 시험한 것입니다.  하나님 대신에 사람을, 하나님의 나라 대신에 사람의 나라를 선택하므로 보이지 아니하시는 분에게서 보이는 만물을 강탈했습니다.  그들은 십자가 없이 행했고, 십자가의 원수로 행했습니다.  그것은 지적 면에서는 하나님께 대한 불신앙과 자만심입니다.  의지적 면에서는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욕망입니다.  감정적 면에서는 금지된 열매를 먹으려는 호기심입니다.  마귀와 짝하여 하나님을 배반하고 범죄했습니다.  아담은 십자가를 거부하고, 십자가 없이 인간 왕국을 지상천국으로 건설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날 인류는 아담과 같이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빌 3:19)  십자가 없는 그들이 무슨 짓인들 못하겠습니까?  하고 싶은 대로 행합니다.  하나님 없이 그들은 무엇이든지 만들어내고 지어내고 말합니다.  자유만만이요 자신만만입니다.  그러나 과연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행복할까요?  하나님은 범죄한 인간에게 엄숙한 선고를 내립니다.  “여자여,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남자여,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 3:16-19).

   도시 문명과 우주과학을 발명한 인간은 정말 위대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우주 가운데서 자기를 잃어버린 불안과 공포, 고독과 허무의 절망에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밖으로는 무언가 만들어낸 것 같은데 안으로는 모든 것을 잃어버린 상실감과 무가치성 때문에 괴로워합니다.  의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여전히 인간의 육체는 늙고 병들고 죽어야 합니다.  인간의 영혼은 범죄로 인해 더러워지고 무디어졌지만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에 떠나온 낙원을 늘 그리워합니다.  ‘어딘가 영생이 있을 꺼야 어딘가 낙원이 있었지?’  그 바램과 열망은 예술로 표현되고, 예술은 모두가 불멸을 지향합니다.  ‘인생은 짧으나 예술은 길다’(그리스 의학자 히포크라테스).  우리 마음에는 뻔하지만 우리에겐 그것을 이루어낼 실력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인간들이 생명 나무 열매를 따먹고 영생할까 하여 에덴동산에서 그들을 내보내어 땅을 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로서 나온 인생이 하나님께로부터 쫓김을 받는다는 것, 이것이 바로 죽음입니다.  하나님이 생명인데 하나님을 떠나야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영혼의 죽음입니다.  그 결과로 육체는 100년 이내에 흙으로 돌아가야 하고, 흙집인 육체가 무너지면 죽은 상태의 영혼 그대로 유리하는 별처럼 흑암의 지옥으로 떨어집니다.  

   이런 인간의 실존에는 결코 희망이 없습니다.  십자가를 거부한 인생에겐 죽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갈보리 산 위에 다시금 십자가가 세워졌습니다.  십자가가 셋인데 중앙은 예수님의 십자가요 나머지 둘은 행악자들의 십자가입니다.  한편 행악자가 예수님을 비난합니다.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나님이 사람을 위하여 기름 부으신 구세주라면 지금 당장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또 한편 행악자가 그 사람을 꾸짖습니다.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우리가 우리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이와 같이 이 세상에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는 상이한 두 가지 태도와 가치판단이 있습니다.  예수가 자기 죄 때문에 유대인의 법령, 로마인의 법령에 걸려 죽었다는 해석이 하나요, 그가 무죄하신 데 세상 죄를 지고 가신 하나님의 어린 양이시란 해석이 또 하나입니다.  하나는 예수가 무능하여 죽으셨다는 것이요, 또 하나는 저와 여러분의 죄의 사유함을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예수 십자가 안에 계셔서 우리 죄를 사해 주실까요?  세상과 다시 화해하실까요?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고 영원한 화평을 즐기는 교제의 문이 죄인에게 활짝 열릴까요?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가 다시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둘러싼 좌, 우편 강도는 자기의 죄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는 인류의 운명을 가리킵니다.  그 가운데서 무죄하신 분이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 위에는 유대인의 왕이라고 쓰인 패가 달렸는데 왕은 백성의 목자요 생명과 재산을 책임진 대표자입니다.  예수님은 신자의 왕과 목자로서 고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한편 강도는 그것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다는 사실과 그분이 나를 구원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의 한편 강도가 외칩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당신의 왕국에서 나를 기억하소서 나는 당신의 양떼요 당신의 백성입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습니다(롬 10:13).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롬 10:9-12).  할렐루야!

   예수 십자가에는 두 가지 위대한 하나님의 은혜가 아롱져 있습니다.  첫째, 신구약 성경은 공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도 없다(히 9:22)고 말씀합니다.  롬 5:6에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다”고 했고, 8절에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다”고 했습니다.  계속해서 바울 사도는 예수 십자가 구원의 영원한 효력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롬 5:9-10).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 높이 달리셔서 우리들의 죄에 대한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십자가 위에서 끝났습니다.  당신의 흘리신 피로써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과를 사하셨습니다.  오늘도 이 보배 피는 샘물처럼 솟아나 우리의 선한 양심을 씻어내립니다.  우리는 용서받았습니다.  의로워졌습니다.  구원받았습니다.  예수 십자가의 못 박히심은 인류 구원의 상징입니다.  우리의 구원에 대해서는 예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무명의 시인은 예수 십자가를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할렐루야 할렐루야 튼튼히 섰도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온 세상 비웃고 바람이 심하나 튼튼히 섰도다 할렐루야 십자가 튼튼히 섰도다 할렐루야 십자가 할렐루야 영원토록 흔들리지 않고 섰도다 할렐루야 영원토록 주의 영화로운 십자가”  오늘도 예수 십자가는 튼튼히 서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도 영원토록 튼튼합니다.  할렐루야!

   둘째, 예수 십자가 그 자체는 죄의 권세 자체를 파괴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흘리신 피는 우리 죄를 씻어 정결케 하고, 예수 그리스도 자신은 우리의 죄성을 파괴하여 성결케 만들어 줍니다.  성결의 능력을 발휘해 줍니다.  바울 사도가 갈 5:22-24에 썼습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백번 용서받고 백한 번 죄를 지으면 용서받은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기독교는 부도덕을 조장하는 종교로써 낙인찍힐 것입니다.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신 예수를 죽음에서 다시 살리신 하나님의 능력이 죄악과 정욕과 마귀의 권세를 파괴합니다.  제어합니다.  물리칩니다.  우리는 매일 용서함 받을 뿐 아니라 매일 부활의 생명을 받습니다.  죄를 이기고 거룩하게 살아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예수 부활의 생명이 내 속에 나타나게 하는 유일한 길은 예수 십자가를 내 속에 아로새기는 것입니다.  한편 강도가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주께서 즉시 대답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진실로, 진실로가 아닙니다.  두 번 말할 필요 없이 즉시 너는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구원만 아니라 구원의 현재성도 강조한 말씀입니다.  예수 부활의 생명으로 사는 길은 그리스도와 일체가 되어 예수와 함께 믿음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매일 순간마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힐 때, 그렇게 믿고 받아들일 때, 그리스도의 부활의 영광스런 생명이 여러분에게 임합니다.  죄 용서만 아니라 오늘 나의 심령에 낙원이 회복됩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빌 3장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라”(10-11).  그리스도를 얻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연합하고 고난과 연합하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의 능력이 신자의 구원을 위해 역사합니다.  기독교는 십자가의 사건만 기념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십자가의 능력이 내 속에서 생명으로 역사합니다.  그래서 성품이 변하고 성질이 변하고 삶의 성격이 변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갈보리 산 위에 일어난 에수 그리스도의 객관적인 사건이 나의 영원한 구원의 기초가 된 것을 믿고 감사합시다.  그리고 예수와 함께 한편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처럼 십자가 위에서 순간순간 예수님과 만납시다.  “내 눈과 발, 내 손과 입술, 나의 소유, 나의 시간, 나의 재능을 당신께 바치나이다. 당신을 위하여 드리나이다”  바울 사도가 다시 말씀합니다.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롬 6:10-11).  신자는 그리스도와 일체가 되었기에 그 부활의 생명으로 이 세상에서 낙원을 경험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본받아 십자가를 걸머지고 살면 참다운 예수 그리스도의 평안이 내 심령을 주장합니다.  예수 믿는 기쁨으로 항상 기뻐하며 그 기쁨을 위해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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