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도제일교회



















담임목사 소개

설교방송

칼 럼


666   1/34

 내용보기

작성자


운영자

동영상보기

제목


11월 26일 / 새 역사를 창조하는 행동철학
창세기 1:1-5, 2:1-3

   우리가 아는 대로 절대적인 창조는 오직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또, 진정한 창조의 목적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역사적 인간적 창조는 역시 인간의 노력을 통하여 인간 자신이 성취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 민족이 60년대 이후에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자, 우리도 잘 살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노력했기 때문에 새로운 도약의 역사를 이룩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날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기 위하여 기도하고 노력하는 것은 모든 신자들의 사명입니다.  상대적 인간적 차원의 역사는 인간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신자는 이 역사의 장에서 진정한 의미의 새 역사를 창조해 나가야 합니다.  두 손을 불끈 쥐고 “전진하지 않으면 퇴보한다, 중단하는 자는 승리하지 못한다”고 외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분의 뜻을 알기 힘쓰며 그 거룩하신 뜻이 이 땅에, 나의 생애에, 우리 교회에 이루어지기 위하여 노력해야 합니다.  성도의 생애는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의 역사이기 때문에 또한 하늘의 역사요 성령님과 함께하는 역사입니다.  저는 이 시간 성경의 첫 페이지를 열어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이 7일 동안 천지 만물과 우주를 창조하신 기사를 통하여 또 하나의 작은 우주인 우리의 생애 가운데 하나님이 원하시는 새 역사를 창조하는 행동철학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첫째 날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곳에서 빛을 창조하셨습니다.  창조의 첫 날, 우주에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있었던 것처럼 작은 우주인 모든 사람들의 가슴 속에는 죄와 저주로 인한 혼돈과 공허와 흑암 때문에 모두들 어쩔 수 없이 빛을 찾아 헤맬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에는 빛에 대하여 두 가지를 말씀합니다.  하나는 요 1장에 나오는 생명과 구원의 빛입니다.  이 빛은 하나님의 독생자, 세상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람이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을 때 그들은 근원적인 생명의 빛, 영원한 구원의 빛을 소유하게 됩니다.  창조의 첫 날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이 수면을 운행하신 것처럼 오늘날도 하나님의 신은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이 죄악과 파멸의 땅 위에서 교회와 함께 빛으로 운행하고 계십니다.  또 하나는 시 119:105에 나오는 신자의 행할 길을 인도하는 빛입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이 빛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인도한 불 기둥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신 다음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으시고 말씀과 성령을 통하여 신사적으로 우리의 생애를 인도하고 계십니다.  사도 바울은 빌 2:13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을 알고 순종하는 새 역사를 창조하려면 제일 먼저 그분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향한 당신의 뜻이 무엇입니까? 나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어느 학교에 가고, 무슨 사업을 하고, 누구와 결혼해야 합니까? 내가 행할 길을 당신의 빛으로 비추소서”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고 그분에게 행할 길의 선택을 맡기는 자에게 하나님은 말씀과 성령, 환경과 사람들을 통하여 그가 행할 길을 아침 빛 같이 뚜렷하게 보여주십니다.  행 2:17과 요엘 2:28에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고 말씀하셨는데 하나님은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께 받은 꿈과 창조적 아이디어를 가지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한다”(잠 29:18)는 말씀대로 하나님께로부터 확실한 꿈과 사명을 받지 못한 사람은 언제나 뒤떨어집니다.  하나님의 구체적인 뜻을 밝고 환한 말씀의 빛 가운데서 찾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묻지도 기다리지도 않기 때문에 고생만 하고 성공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당신의 주권을 인정하고 기도하며 기다리는 자는 반드시 소원의 항구로 인도해 가십니다.  이것이 새 역사를 창조하는 출발점입니다.

   하나님은 둘째 날에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궁창 위에 물과 궁창 아래의 물로 나누었습니다.  어떤 소년이 물에 빠져 며칠간 포류하다가 지나가던 어선에 구사일생으로 건짐을 받고는 신문기자들에게 “나는 다시는 물에 가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물은 잘 사용하면 좋지만 잘못 사용하거나 잘 모를 때는 굉장히 무섭습니다.  농부에게 홍수가 무섭고, 수영을 못하는 사람에게 바닷물이 무서운 것처럼 물이란 절망적인 현실 상황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무섭고 절망적인 물 가운데 궁창 즉 하늘을 두셨습니다.  여러분, 가슴이 답답할 때는 하늘을 쳐다보십시오.  하늘은 높고 푸르고 가없습니다.  가슴이 탁 트입니다.  왜요? 하늘은 언제나 하나님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하늘에는 뭉게구름처럼 유유자적하게 역사하시는 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늘에는 불가능이 없고 무한한 가능성이 한없이 펼쳐져 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막 10:27).

   예수 믿는 사람과 불신자의 차이가 여기 있습니다.  그들은 가시적인 것만 보지만 신자는 그들이 보지 못하는 하늘을 소유하고 시시때때로 이 하늘을 바라보고 소망과 용기와 위로를 얻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후 4:18에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 말씀했는데 노아가 홍수 가운데 150일간이나 표류하면서도 낙심하지 아니한 것은 물만 보지 아니하고 천정에 달린 창문을 통하여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절망과 시련의 파도가 물결치지만 하늘을 바라보는 창문인 성경을 통하여 신자는 기적을 창조하시는 하나님,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하나님(시 68:19)을 앙망합니다.  우리는 푸르고 푸른 희망찬 하나님의 세계와 그 약속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도 살아 계신 하나님이 홍수 때에 좌정하시고(시 29:10) 절망적인 현실 가운데 임재하사 역사하고 계십니다.  이처럼 우리의 앞길을 살피시는 가장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대한 불굴의 믿음이 새 역사 창조의 두 번째 단계입니다.  

   하나님은 셋째 날에 천하의 물을 한 곳으로 모으고 물속에 있던 땅이 들어나게 하시고 그 들어난 땅에 풀과 씨 맺는 채소와 열매 맺는 과목이 무성하게 나도록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아무리 창조적 아이디어가 있고, 신념의 하늘이 열려있어도 물속에 잠겨있던 땅이 드러나듯이 그 생각과 신앙이 구체적인 계획으로 떠오르지 않으면 하나님은 축복하시지 않습니다.  우리나라가 암매한 유학에 젖어있을 때 서양은 과학적인 사고와 계획으로 우리보다 몇 십 년 앞선 문명을 이룩하였습니다.  우리 교회나 개인의 생애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와 신념이라도 마음속에 넣어두고만 있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물속에서 땅이 드러나듯이 그것의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목표와 시한을 정하고 하나님께 나아와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이것을 가지고 왔으니 이루어 주시옵소서”  물속에 있을 때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어도 들어난 육지는 마음대로 측량하고 이용할 수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땅 위에 그려진 우리의 청사진을 보시고 하나님의 뜻에 맞을 때 능력과 형통으로 축복해 주십니다.  우리 교회도 대망의 2018년을 준비합시다.  장로님들의 가슴 속에, 청장년들의 가슴 속 물에 잠긴 청사진들을 땅 위로 드러내십시오.  여러분의 계획 속에 많은 시행착오가 있어도 좋습니다.  다섯 번, 여섯 번 또 세우고 또 그려서 분명한 소원과 신념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십시오.  하나님은 이런 비전의 성도들을 통하여 당신의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하나님은 넷째 날에 하늘의 궁창에다 해와 달과 별들을 창조하시고 해와 달과 별들로 주야와 일자와 연한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아 6:10에 “아침 빛 같이 뚜렷하고 달 같이 아름답고 해 같이 맑고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한 여자가 누구인가”라고 말씀했는데 이 위엄 있는 여자는 예수 믿는 성도이며 달은 아름다운 정서를, 해는 맑고 밝은 지혜를, 별들은 어두운 밤에 반짝이는 총명을 의미합니다.  궁창은 소우주인 우리들의 마음입니다.  중생한 성도의 마음에 하나님께서 정서와 지혜와 총명을 주셔서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을 분별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으며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실 것인가?  그리고 어느 때에 이런 일을 행하실 것인가?  이런 것은 우리 이성이 찾아내야 하는 것이지만 건조한 이론과 삭막한 투쟁만으로는 새 역사를 창조할 수 없습니다.  아름다운 정서와 열렬한 감정이 동반돼야 합니다.  우리가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이 주신 지혜와 정열과 총명으로 범사에 정하신 때를 가려서 화평한 기운으로 일하면 반드시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마침내 당신의 영광을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은 다섯째 날에 물에는 생물을 번성하게 하시고 하늘에는 새가 날게 하사 모든 생물과 새들로 천지간에 충만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의 부요하심과 충만하심을 연상해 보십시오.  우리 하나님은 염소 새끼 한 마리 안 주시는 분이 아니라 살찐 송아지를 잡아주시는 분이십니다.  제가 가만히 사람을 관찰해보면 어떤 사람은 아무래도 생각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 옹졸하고 쩨쩨해서 ‘역시 고만고만 하겠구나’싶고, 또 어떤 분은 생각이 깊고 넓고 커서 ‘역시나 큰일을 해내겠구나’싶은 짐작이 갑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사람을 가려서 임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정말 아기자기하고 부유하고 넉넉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을 비롯한 신앙적으로 성공한 수많은 성도들의 간증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가난하고 인색하고 실패하고 망한다는 생각을 뿌리째 뽑아버립시다.  신자는 현실의 종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생각을 따라 현실을 위에서 내려다보며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때와 징조를 분간하고 일을 진행하면 하나님께서 이미 당신의 뜻을 위하여 모든 필요를 벌써 명하여 놓으신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 교회는 이미 노회의 leading church, 대표적 교회가 되었지만, 우리가 적극적으로 방해만 하지 않으면 노회 최초의 superb church, 초일류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달란트 비유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여섯째 날에 인간을 지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으로 하여금 모든 만물을 다스리고 정복하게 하셨습니다.  정복이 거저 앉아서 됩니까?  피나는 노력과 투쟁이 요구됩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새마을지도자대회에서 “새마을운동은 하나의 행동철학입니다. 말이나 이론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고 여기에는 반드시 실천과 행동이 따라야만 합니다. 피와 땀이 요구됩니다”고 훈시했습니다.  전력을 투구하지 않고 그저 얼렁뚱땅 지내면서 축복받고 성공하겠다는 것은 염치없는 짓입니다.  또 다스린다고 하는 것은 투철한 책임감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책임감 없는 사람은 절대로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책임감,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명에 대한 책임감, 시간과 재능에 대한 책임감, 직분과 건강에 대한 책임감 등 자신과 교회와 민족과 인류에 대한 책임감이 강한 사람에게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응답하시고 문제를 해결하는 권능을 주십니다.    

   사람이 만물을 다스리고 정복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절대 긍정적인 정신자세입니다.  사 26:3에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고 말씀했는데 “안 된다, 못 살겠다”고 늘 부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은 사실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습니다.  “나는 정복하고 다스린다. 내 병을 다스리고 내 못된 성품을 다스린다. 내 가정을 다스리고 돈을 다스린다. 나는 성공하고 부유해진다”고 늘 주장하는 성도는 하나님과 함께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  “기독교의 세계전략”이란 책에서 J. K. Bolarin 목사가 말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가 실패한다고 말하지만 실패하는 것은 기독교가 아니라 임무 수행 도중에 낙심하고 소극적이 되는 기독교의 교회이다”  여러분, 예수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승리하는 교회입니다.  늘 변명하고 물러서는 습성일랑 철저히 회개합시다.

   하나님은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안식은 완전하고 영원한 안식입니다.  하나님은 안식 가운데서 창조의 날이면 날마다 당신이 창조하신 피조물들을 보시고 기뻐하셨습니다(잠 8:31).  우리도 일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안식과 평강을 누려야 합니다.  미래 때문에 오늘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일의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과정과 끝이십니다.  우리의 역사란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에 수종드는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의 시작부터 끝까지 하나님을 중심으로 그분의 인도와 허락과 도우심과 역사하심을 따라 행하고 그 모든 일의 결과를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참된 기쁨은 창조한 다음에야 찾아옵니다.  여러분의 주위에 아직 풀리지 않는 괴로운 일들이 있습니까?  바로 그 일을 가지고 저녁과 아침에 주님께 나아가십시오.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마음속에 평안과 안식이 임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여러분의 문제를 맡으셨다는 신호입니다.  하나님의 손이 나의 연약한 손을 붙잡으신 것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하나님의 평강을 따라 그분과 함께 진행해야(행 9:31) 어려운 문제가 해결되고 새로운 질서가 잡히고 창조적 열매가 맺힙니다.  우리는 오늘 아침 하나님께서 우주 창조의 사역을 통하여 보여주신 일곱 가지 행동철학을 알아보았습니다.  이 성경적인 행동철학을 나의 것으로 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정한 의미의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 가십시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히 11:6).
번호 제목 듣기 작성자 작성일 조회
666
 4월 22일 / 나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사오니

운영자
2018/04/22 7
665
 4월 15일 / 신자가 부를 만가(輓歌)

운영자
2018/04/15 16
664
 4월 08일 / 부활하게 하시는 능력의 하나님

운영자
2018/04/08 28
663
 3월 25일 / 천국과 지옥은 분명히 있다 ②

운영자
2018/03/25 61
662
 3월 18일 / 천국과 지옥은 분명히 있다 ①

운영자
2018/03/18 66
661
 3월 04일 / 빈 그릇을 빌되 조금 빌지말고

운영자
2018/03/04 85
660
 2월 25일 / 깊은 데로 가라

운영자
2018/02/25 84
659
 2월 18일 / 환경은 같았으나

운영자
2018/02/18 87
658
 2월 11일 / 내가 교회의 일꾼이 되었노라

운영자
2018/02/11 91
657
 2월 04일 / 즐거운 결말을 위하여

운영자
2018/02/04 95
656
 1월 28일 / 홍수 때라도 부를 수 있는 노래

운영자
2018/01/28 91
655
 1월 21일 / 지성소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운영자
2018/01/22 87
654
 1월 14일 /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뵈옵고

운영자
2018/01/14 90
653
 1월 07일 /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운영자
2018/01/07 88
652
 12월 25일 /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운영자
2017/12/28 102
651
 12월 24일 /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운영자
2017/12/24 119
650
 12월 17일 / 여성의 위치와 책임

운영자
2017/12/17 253
649
 12월 10일 / 내가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라

운영자
2017/12/10 413
648
 12월 03일 / 십자가의 참된 종교

운영자
2017/12/03 513

 11월 26일 / 새 역사를 창조하는 행동철학

운영자
2017/11/26 528
1 [2][3][4][5][6][7][8][9][10]..[34] [next]
Copyright 1999-2018 Zeroboard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송도제일교회/부산광역시 서구 성산길 46(암남동) / 051-248-6071~3 fax 051-248-60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