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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2일 / 보내심을 받은 자의 삶
누가복음 10:1-6

   신자조차도 종종 삶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가 잘못되어 ‘내가 내 삶의 주인공이고 하나님은 날 도우시는 보조자’처럼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도가 ‘날 주관하여 주소서, 다스려 주소서’보다는 ‘도와주소서, 형통케 하소서’라고 할 때가 많습니다.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보다는 ‘내 욕심, 내 계획을 성취하여 주소서’라고 부르짖을 때가 훨씬 많습니다.  물론 ‘Help me’라고도 기도해야지만 우리는 더 많이 ‘lead me’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 삶의 주격이시고 나는 그 분의 뜻을 성취하는 조격이라고 생각하면 우리 삶이 얼마나 펑안하고 복된지 모릅니다.  반대로 내가 내 삶의 왕이고 하나님이 내 삶의 수종자가 되면 얼마나 불편할까요?  바울 사도가 말씀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요(고후 2:15)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라(고후 3:3)’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받으면 우리의 신분에 거대한 변화가 옵니다.  인생관이 180도 바뀝니다.  하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 되시고 우리는 즉시로 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그리스도의 대사, 천국 복음의 사신으로 보냄을 받게 됩니다.

   마치 현지에 그대로 주둔하면서 배속부대가 바뀐 셈입니다.  마귀의 사자가 하나님의 사자로 변합니다.  그러므로 이 거대한 변화를 내 삶의 철학으로 수용하는 데는 상당한 곤란을 겪는 것이 정상적입니다.  ‘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방금 구원받은 우리가 구원받아야 할 세상에 다시 보냄을 받습니다.  하나님을 반역하고 음란하듯이 우상을 섬기는 세상으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증언하기 위해 보냄을 받는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열두 제자와 별도로 70인 전도대를 세워서 당신께서 친히 가시려는 동네에 둘씩 짝을 지어 보냅니다.  이를테면 우리는 이 세상 속에서 주의 이름과 영광을 위하여 분명한 사명감과 목적을 가지고 살아내야 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가 원 사도라면 우리는 모두 사도화, apostleship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 성도는 모두 21C 사도화 훈련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70인 전도대를 보내시면서 첫째, 천국 일꾼이 부족함을 지적하셨습니다.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여러분은 이 주님의 말씀이 무척 의아하시죠? 아니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신학생과 목사와 신자가 있는데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그런데 여기 주목할 것은 추수할 주인이 친히 보내시는 일꾼입니다.  이 세상에 자원하여 직업의식으로 자신을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는 사람은 많아도 정작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보내심을 받은 일꾼은 적습니다.  사람에게서 보냄을 받은 일꾼은 문제도 많고 오해도 많습니다.  시험이 오고 환난이 오면 원망하고 분노합니다.  감정과 자존심 문제로 복잡해집니다.  예수께서 ‘심은 것마다 내 하늘 아버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라’(마 15:13)고 말씀했는데 주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지 않은 자는 신앙의 뿌리가 약하기 때문에 쉽게 흔들립니다.  그러나 주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은 바람이 불고 물결이 일면 더욱 굳세게 주님을 붙잡고 성령의 위로 가운데 든든히 서 갑니다.
  
   둘째, 주님은 70인 전도대를 보내시면서 내게서 보냄을 받고 사는 사람은 아무것도 염려할 것이 없다고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갈지어다 전대나 배낭이나 신발을 가지지 말며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그 집에 유하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말라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놓는 것을 먹고 거기 있는 병자를 고쳐주어라”  여러분은 주님의 이 말씀에서 무엇을 느낍니까?  모든 동네, 모든 사람, 모든 상황이 다 주님의 통치 아래 있음을 느끼지 않습니까?  모두가 주의 소유이며 주께서 주인이라는 강한 주장이 드러나지 않습니까?  너희가 내게서 보냄을 받은 이상 안심하라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물질 문제와 인간관계를 내가 다 해결해 주마 나는 너희를 위해 늘 예비하고 준비하는 하나님이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딤후 2:3-4에 기록합니다.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주께서 모집하신 병사들입니다.  주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21C 사도들입니다.  우리의 삶은 더 이상 우리 자신의 삶이 아닙니다.  주인이 바뀌었고 삶의 목적이 바뀌었습니다.  우리는 주님께 종속되었습니다.  신자의 삶은 예수님을 위한 삶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삶은 주께서 책임지셔야 합니다.  여자가 시집가면 남편이 그 생계를 책임지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주인이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마 10:9-10)고 약속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는 집을 두 채나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통장을 세 개나 가질 이유가 없습니다.  내일 일을 염려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불서의 비유경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장님이 외나무다리를 조심스럽게 건너고 있었습니다.  중간 지점에 이르러 생각하기를 이 밑은 굉장히 깊고, 물의 깊이도 내 키의 몇 갑절이 될 것이니 ‘떨어지면 죽는다’는 두려움에 온몸이 굳어버렸습니다.  그때 마침 그곳을 스치는 회오리바람이 서 있는 그를 밀어붙인 순간 허공을 휘젓던 양손이 엉겁결에 난간을 잡고는 ‘사람 살리라’고 외쳤습니다.  그때 그 옆을 지나던 눈뜬 사람이 이 광경을 보고 “여보시오 손을 놓으시오”라고 권했습니다.  그러나 장님은 “난 앞을 못 보는 사람이니 제발 살려주시오”라고 애걸했습니다.  ‘고집 부리지 마시고 놓으시오’ 또 한 번 권유했으나 그는 손을 놓지 않았습니다.  얼마 후 팔의 힘이 빠진 장님이 ‘이제 이 세상도 마지막이구나’하고는 양손을 놓고 말았습니다.  허공에 떨어져 깊은 물속에 빠져 죽는 모습을 상상했던 그가 어떻게 된 셈인지 손을 놓자마자 그 자리에 서 있게 되었습니다.  하도 기적 같은 일이라 가만히 앉아서 두 손으로 주위를 더듬어 보니 모래였습니다.  눈뜬 사람이 ‘손을 놓으라’고 한 것은 매달려 있는 사람의 발끝이 모래사장에 닿을까 말까 하기에 ‘안심하고 놓으라’고 말한 것인데 앞을 보지 못하는 그 사람은 자기 고집 때문에 그 소리를 듣지 못한 것입니다.  모래 위에 선 것을 깨닫게 된 그는 양손에 묻은 모래를 털면서 ‘그럴 줄 알았다면 일찍 손을 놓을 걸 그랬다’고 후회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전방위적으로 우리를 돕고 계십니다.  주님의 손길은 벌써부터 역사하고 있습니다.  마 14:22-33에 예수님이 제자들을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보내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배가 한참 잘 나가다가 바람이 거스르므로 고난을 당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물 위로 걸어오셨는데 제자들은 그 광경을 보고 유령이라고 무서워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즉시 그들에게 말씀하셨지요.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아버지께서 보내셨으면 아버지께서 책임지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버지께 보냄을 받은 이상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유유히 하나님이 보내신 곳에서 열심히 일하며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마 6:33-34)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요 14:1-2)”  ‘염려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평안하라’  이 세 마디 말씀이 이 위험한 세상에 보내심을 받은 사도화 일꾼들에게 주시는 하늘 본국정부의 삼대 훈령입니다.  

   셋째, 주님은 보내심을 받은 자의 삶의 두 가지 특징에 대하여 지적하셨습니다.  먼저, 보냄을 받은 자의 삶은 많이 가지려고 쓸데없이 싸우지 않습니다.  서로 문안하는 사교행사 때문에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화목하고 이웃과 평안을 누리는 평안의 사도가 됩니다.  평안을 빌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평안을 소유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  신자는 평안을 기도할 뿐만 아니라 평안한 삶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마음에 분노와 시기와 다툼이 있다면 다른 집에 가선 안 됩니다.  먼저 기도하여 내 마음에 평화의 불이 임한 다음 사람을 만나야 그에게 평안이 전염됩니다.

    다음에, 줄기차게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증언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그들이 반대해도 ‘그래도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증언합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시고, 그리스도는 우리들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보내신 것은 오직 평안의 복음을 증언하는 중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섭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한 결과에 대하여 너무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환영을 받아도 좋고, 배척을 받아도 좋습니다.  구원 얻는 것은 그들이요, 배척하면 우리가 축복한 평안이 우리에게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 보냄을 받은 우리의 말을 듣는 자는 곧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자요, 그리스도의 말씀을 저버리는 자는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입니다(눅 10:16).

   넷째, 보냄을 받은 자로서 그 사역의 성공 여부에 너무 신경을 쓰지 말고 우리를 예정하사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총에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지적하셨습니다.  70인 전도대가 주님이 분부하신 대로 순종했더니 귀신들이 쫓겨나고 사람들이 속속히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그래, 귀신의 대장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내가 사탄을 결박했으니 귀신이 항복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냐? 너희가 귀신을 쫓아내게 된 것은 내가 사탄을 묶었기 때문이야! 혹시라도 마음에 인간적인 자랑이나 세속적인 허영에 들뜨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스펄젼 목사님이 ‘작은 사람은 계속적인 성공을 감당하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어느 때는 교회가 부흥하고, 어느 때는 부흥되지 않습니다.  누구 탓입니까?  그 영광이 누구에게 있습니까?  하나님이 그때, 그 교회에 그러한 능력과 은혜를 베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속적인 척도로 성공을 측정해선 안 됩니다.  오히려 그때 그 자리에서 일하게 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런 현상보다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근원, 그 뿌리로 돌아가서 기뻐할 줄 알아야 합니다.  곧 새로운 피조물로 지음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근원적인 은혜, 우리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으로 인하여 기뻐하고 기뻐해야 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여러분, 신자는 제 마음대로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세상 정부나, 어떤 높은 사람에게서 보냄을 받고 사는 존재도 아닙니다.  우리는 이 땅 위에서 태어나고 이 땅 위에 살고 있지만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께로부터 다시 보냄을 받은 사도들입니다.  김문제 목사님의 말씀을 빌리면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돌고 도는 신공 위성이 된 것입니다.  나는 아버지께로부터 보냄을 받았다는 이 신앙적 인식이야말로 우리의 삶 전부를 새롭게 합니다.  의미 있게 하고 진정으로 자유롭게 만들어 줍니다.  내가 하나님께 보내심을 받은 이상 나의 삶은 근원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삶입니다.  바울 사도가 고백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의 보장을 받고, 하나님의 안식 속에서 자유롭고 느긋하게 사십시오.  편히 쉬면서 즐거워하십시오.

   우리 삶의 목적은 물질추구가 아닙니다.  사교 본능의 충족이 아닙니다.  다투고 싸워서 얻는 성공적인 삶도 아닙니다.  하나님께 보내심을 받은 자의 삶은 어찌하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것을 증언하는 삶입니다.  평안을 보여주고 평안을 기도해 주고 그리고 깨끗이 떠나가는 삶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삶이 세속적인 의미에서 성공인가, 실패인가? 를 묻지 맙시다.  오로지 모든 삶의 열매를 하나님께 맡겨 드립시다.  단지 내가 하나님께 구원받아 보냄을 받은 삶을 살 수 있다는 이 한 가지 사실 때문에 무한히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오직 그 은혜를 기뻐할 수 있는 겸허한 삶의 자세를 언제까지나 견지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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