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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9일 / 예수 그리스도의 큰 용사
사사기 6:11-18                               
 
   다음 주일 열리는 2017년 제13회 전도축제는 바로 그 주간 토요일 오후 5시에 단순한 새가족 환영회가 아니라 온 교회가 새가족과 함께하는 가을음악회로 연결됩니다.  금년 전도축제의 주제는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큰 용사가 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큰 용사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심을 믿으면 큰 용사가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께서 큰 용사시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큰 용사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와 함께 계신 하나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큰 용사신지 알아보실까요?  우리 주님은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시기 때문에 큰 용사십니다.  잠언 16:32에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로마제국을 무너뜨리고 히틀러의 제3제국, 소련연방을 무너뜨리셨기 때문에 큰 용사이실 뿐 아니라 그보다 위대한 일에 있어서 큰 용사이십니다.  

   요 13장에 보면 예수님은 저녁 잡수시기 전에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제자들을 지으셨고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은 선생이십니다.  제자들을 선택하셨고 가르쳤습니다.  그들의 존재가치와 장래 진로가 오직 예수님의 마음에 있고 손 안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높고 귀한 분께서 제자들 앞에 무릎을 꿇고 허리를 굽혔습니다.  고약한 발 냄새를 맡으며 발의 더러운 떼를 정성스럽게 씻겼습니다.  한 사람씩 일일이 새로 대야에 물을 떠나르시면서 씻겼습니다.  그 분위기는 말할 수 없이 엄숙했습니다.  세상에 그런 일을 본 적이 없었기에 숨도 내쉴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모든 일을 마치시고 정중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 13:13-15).

   베드로는 평생 이 강렬한 교훈을 잊지 못했습니다.  그는 그 주님의 모습과 말씀을 연상하며 교회들에게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 5:5-6).  진정한 용사가 누구입니까?  첫째, 사랑의 행동에 있어서 온유하고 겸손한 신자입니다.  교만하고 과시하며 으스대기 좋아했던 베드로를 일평생 납작하게 만든 그분이 큰 용사가 아니고 누구겠습니까?  예수님은 성찬상에서 떡과 잔을 나누어 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받아서 먹어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너희가 다 이것을 마셔라 이것은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 26:26-28).  주님은 그 말씀 그대로 다음날에 우리들의 온갖 죄책을 짊어지시고 십자가 위에 매달리셨습니다.  저주의 십자가 위에서 우리들의 죗값인 죽음의 잔을 마셨습니다.  마시되 한 방울도 남김없이 다 마심으로써 우리들을 율법의 모든 저주에서 속량하여 내셨습니다.  구원해 내었습니다.

   주님은 우리 죄를 용서하시는 사역에 있어서 큰 용사셨습니다.  죄 없으신 그분이 자기를 조롱하고 못 박는 행위에 대하여 일절 참으시며 오히려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사실 로마 병정들이 우리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의 죄가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저들은 단순한 하수인에 불과합니다.  우리들의 죄가 예수님께 가시관을 씌웠고 예수님의 손과 발에 대못을 박았고 예수님의 허리를 창으로 찔렀습니다.  “아버지여 저들은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나는 사실 나의 택한 자, 나의 사랑하는 자, 나를 믿는 자, 나를 순종하고 예배하는 내 백성들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버림을 받나이다”  할렐루야!  예수님께서 온유와 겸손으로써 사망과 형벌의 쓴 잔을 인내하고 마시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한마디로 우리의 죄 사함은 없었을 것입니다.  구속의 역사는 사라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이렇게 썼습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1-3).

   예수님은 대속주로서 구세주로서 우리를 위하여 참으셨습니다.  온유와 겸손한 마음으로 참으셨습니다.  우리의 죄가 그분을 찔러 상하게 하고 죽게 하였지만 그분은 참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를 위하여 죽음을 대신하신 예수님, 일체 끝까지 참으신 큰 용사를 바라봅시다.  그분은 그날 이후 우리의 일생을 참으시고 한없이 용서하십니다.  우리들의 모든 잘못을 날마다 씻어주십니다.  우리의 온갖 상처를 씻고 싸매주십니다.  치유하시고 강건케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죽음을 대신하시고 우리의 죄와 병을 짊어지시고 고통과 슬픔을 담당하신 유일하신 이유는 사랑이었습니다.  무궁한 사랑이었습니다.  이유 없는 사랑이기에 아무 거칠 것이 없었습니다.  그 사랑이 얼마나 컸으면 자기 목숨을 주었겠습니까?  자기 살과 피를 참된 양식과 음료로 제공했겠습니까?  예수님은 우리의 죄와 죽음을 가져가시고 우리에게 당신의 의와 생명을 가져오셨습니다.  저주와 불행을 가져가시고 영원한 축복과 행복을 가져오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주님의 사랑의 행동은 얼마나 온유하고 겸손합니까?  여기서 우리는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이 진실로 큰 용사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기적을 행하는 것보다 고난 가운데 견디는 것이 더 큰 능력이란 것을 배웁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사랑의 행동을 바라보고 그 위대한 능력을 본받기를 원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 가노라”(빌 3:10-12).  나는 그분의 죽으심과 사랑의  행동에 나타난 온유와 겸손의 능력을 본받기를 원합니다.  내게 하나 확실한 것이 있다면 오직 그리스도께 사로잡힌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어찌하든지 그 부활의 권능, 온유하고 겸손한 사랑의 능력으로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하나님이 일하시는 역사와 현실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씩 하고, 해선 안될 일은 하나씩 버리겠습니다.  완벽한 사람이 되어서가 아니라 기회 있을 때 그냥 행하는 살가운 사람이 되겠습니다.  

   정치학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것은 모두 일어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온유하고 겸손한지는 우리의 삶을 통하여 그대로 들어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진짜 큰 용사시기 때문에 그렇게 죽으시고 그렇게 살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그 주님에게 큰 용사로 불리움을 받으려면 얼마나 낮아져야 하겠습니까?  얼마나 인내해야 하겠습니까?  한번 더 양보하고, 한번 더 용서하고, 한번 더 침묵합시다.  이사야 선지자가 주님의 모습을 묘사합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 53:7).  저는 금년에 겸손하고 온유하게 그리고 조용하게 주님의 죽으심에 참여한 여러분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여러분이 마음에 안 드는 일들에 대하여 떠들어댔다면 우리 교회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내년에는 더욱 겸손하고 온유하게 큰 용사이신 하나님을 닮읍시다.  더욱 조용하고 은밀하게 큰 용사이신 예수님을 본받읍시다.  부디 주님의 사랑과 죽음의 행동에 나타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썩고 죽으신 그 숭고한 사랑과 장엄한 신앙에 사로잡힌 큰 용사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진정한 용사가 누구입니까?  둘째, 혼자서 끝까지 견뎌내는 신자입니다.  하나님께서 큰 용사를 만드실 때는 반드시 그를 외롭게 만드십니다.  광야로 끌어내십니다.  다윗처럼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시 27:10)고 고백하게 만드십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외로운 중에서 하나님을 일대일로 만나 강하게 됩니다.  “내가 처음 복음을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딤후 4:16-17).  하갈이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뵈옵고 이스마엘을 위한 우물이 터져나오는 기적을 경험한 것은 광야에 외로이 쫓겨났을 때입니다.  모세가 나일 강변에서 하나님의 건지심을 받은 것은 부모가 그를 버렸을 때입니다.  다윗이 사자의 가슴을 가진 큰 용사가 된 것은 그가 굴에 홀로 피신해 있을 때였습니다.  그는 여호와께 부르짖었습니다.  “내 오른쪽을 살펴보소서 나를 아는 이도 없고 나의 피난처도 없고 내 영혼을 돌보는 이도 없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어 말하기를 주는 나의 피난처요 살아 있는 사람들의 땅에서 나의 분깃이시라 하였나이다”(시 142:4-5).

   ‘무슨 일을 하다가 아무도 같이 하는 이가 없고 너를 따라 오는 이가 없거든 네가 지도자가 되라’고 나폴레옹 황제가 말했습니다.  사람의 인정이 없어도, 사람의 환호가 없어도 하나님 앞에서 홀로 일할 수 있는 사람,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큰 용사입니다.  큰 용사이신 예수님은 형제들과 제자들에게 버림을 받고 홀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목자가 양을 쳤지만 다 떠났습니다.  외롭고 마음이 무거워서 누군가 함께 있기를 원했지만 그들은 한 시간도 주님과 함께 있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에는 원이로되 욕신이 약하도다 이제는 자고 쉬라 그만 되었다 때가 왔도다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지금은 어둠의 때요 시련의 때로다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막 14:41-42, 28).  거기서 너희를 만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막 16:7).  주님은 홀로 십자가를 지셨고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도우심으로 승리하시고 먼저 갈릴리로 가서 제자들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평강을 선포하시고 그들에게 영원한 승리와 안심을 끼쳤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홀로 타작을 하고 있는데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나타나 말씀합니다.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기드온은 말을 빙빙 돌려 대답했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기대가 가득했습니다.  “오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나이까”  여호와의 사자는 기드온에게만 있는, 이스라엘의 마지막 믿음을 보시고 그를 큰 용사라고 부르셨습니다.  “너는 가서 이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아니 무슨 말씀입니까?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  여호와의 사자가 다시 말씀합니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대저 하나님의 말씀은 불가능이 없습니다.  여호와께서 함께하시고 여호와께서 나를 위해 싸우시면 누가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미디안을 기드온의 손에 맡기셨고 기드온은 여호와의 전쟁에서, 하나님이 함께하신 싸움에서 위대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기드온이 여호와를 위하여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것을 여호와 살롬(24절)이라고 불렀습니다.  여호와는 평강이라, 여호와께서 친히 신자에게 평강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로부터 40년간 이스라엘에는 태평성대가 도래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여호와의 큰 용사가 되어 여호와가 우리를 위해 싸우시는 은혜를 입으면 우리의 삶 속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이 넘치게 됩니다.  우리 심령 속에, 우리가 사는 시대와 지경 가운데 하나님이 주신 평화가 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큰 용사들이 믿음으로 역사하는 곳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과 그가 속한 공동체에 평강을 주십니다.  여호와의 큰 용사 다니엘에게 여호와의 사자가 여호와 샬롬의 복을 선포했습니다.  “큰 은총을 받은 사람이여 두려워하지 말라 평안하라 강건하라 강건하라”  다니엘이 고백합니다.  “그가 이같이 내게 말하매 내가 곧 힘이 나서 이르되 내 주께서 나를 강건하게 하셨사오니 말씀하옵소서”(단 10:19).  이 같은 복이 여러분과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진정한 용사가 누구입니까?  셋째, 언제나 하나님의 명령에 깨어있는 신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큰 용사의 특징은 언제나 우선순위가 분명합니다.  기드온이 미디안과 싸우기 위해 군대를 모집하자 그를 따르는 사람이 32,000명이나 되었습니다.  기드온이 명합니다.  “너희 중에 마음에 두려움이 있거든 돌아가라”  두렵고 떠는 사람, 분쟁을 일으키거나(롬 16:17) 시끄럽기만 한 사람, 22,000명이 돌아가고 만 명만 남았습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그들을 물가로 인도하였습니다.  목마른 그들이 혹은 무릎을 꿇고 머리를 쳐 박고 물을 핥아 먹었는가 하면, 혹은 선 채로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아 먹었습니다.  무엇이 달랐습니까?  이렇게 마시든 저렇게 마시든 무슨 상관입니까?  그렇습니다.  물은 마셔야지요.  그렇지만 물은 마셔도 하나님의 명령을 들을 귀는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똑같이 먹고 마시며 살되 여호와의 큰 용사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한다는 이 대의를 잃지 않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후자 300명만 남겨서 십만 미디안 대군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남은 세월 여호와의 큰 용사로 이 세상을 사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큰 용사는 예수님처럼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해지기 위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 속에 살려고 몸부림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큰 용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하여 살기 때문에 사람이 보지 않아도 알아주지 않아도 하나님이 보시는 앞에서 즐겁게 일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큰 용사는 똑같이 먹고 마시되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생각하면서 일하는 신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큰 용사이신 여러분의 앞날에 큰 용사이신 예수님께서 큰 승리와 축복을 안겨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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