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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2일 /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로마서 8:31-39

   롬 8장은 흔히 신약의 다이아몬드 산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오늘 읽은 본문은 다이아몬드 산에서도 정상 부분입니다.  높은 산에 올라가면 넓은 전망을 즐길 수 있습니다.  현실의 질곡 가운데서 갑갑함을 느끼는 사람은 모름지기 산으로 올라갈 것입니다.  높은 산의 정상에 오르면 광대무변의 파노라마가 눈 아래 놓입니다.  세상의 번민들이 발아래 작은 점들처럼 멀어집니다.  동시에 신자는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사랑의 품속에 안겨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나에게 무엇을 약속하고 있는가?’  구약의 다이아몬드 산은 시편 23편, 그 정상은 6절입니다.  다윗 왕은 그 산의 정상에서 심호흡하며 크게 외칩니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시 23:6).  ‘여호와의 책에는 빠진 것이 하나도 없고 제 짝이 없는 것이 없다’고 이사야 선지자가 말씀했는데 사도 바울은 신약의 다이야몬드 산의 정상인 오늘 본문에서 두 가지 사실을 강조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은혜와 선하심이 얼마나 크냐? 는 것이며 또 하나는 하나님의 용서하심과 인자하심이 얼마나 크냐? 는 것입니다.  사랑은 주는 것과 용서하는 것으로 이루어집니다.

   오스월드 샌더스가 “믿음은 사고방식을 생활방식으로, 신조를 성품으로, 이론을 실천으로 바꾼다”고 말했습니다.  사랑은 추상이 아니라 실질이요 사랑은 로망스가 아니라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제일 큰 희생은 독생자를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하나님이 나를 위해 독생자를 주셨다는 사실은 그분이 내 편이 되셨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믿는 자의 편입니다.  바울 사도가 말씀합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31절).  다윗도 말씀합니다.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들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시 118:6-7).  내 편이요 나를 위한다는 말이 추상적으로 들린다면 본문 32절은 구상화로 표현합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지 아니하겠느냐”  사랑하는 여러분, 아들을 주면 다 준 것 아닙니까?  아들보다 귀한 것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아들과 함께 신자들에게 모든 것을 선물로 주십니다.  

   선물을 줄 때도 요즘은 일정한 룰이 있습니다.  그가 원하는 것, 필요한 것을 주어야지 아무것이나 주면 효과가 반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물으십니다.  “네가 원하는 것이 뭐냐?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 16:24).  엡 3:20-22에 바울 사도가 썼습니다.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이 모두 하나님께 받아서 누리고 삽니다.  더욱이나 믿는 사람은 믿음으로 구하고 받아서 누리는 특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눅 18장에 하나님을 악한 재판장에 비유한 것을 보면 기도 응답이 녹록치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자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삼상 17:45)의 도우심을 받아야만 험한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본성이 드러나면 인간처럼 무서운 존재가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역사해야만 그 마음이 안정되고 통일됩니다.  개인도 가정도, 교회도 나라도 마찬가집니다.  이 세상에서 훌륭하게 된 사람들에게 물어보세요.  당신은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습니까?  그들이 한결같이 대답할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구했더니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해 주셨다오. 하나님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은사를 베풀어주셨다오”  먼저 드려 받은 사람은 없습니다.  구하지 않고 받은 사람도 없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에 떠오른 그것을 기도하십시오.  생각만 해도 들으시지만 더욱 강력한 것은 말로 하는 것입니다.  말로 구하고 생각으로 구하십시오.  생각과 기도가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는 길입니다.  기도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할 길이 막힙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하면 응답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뜻에 맞추어 구하면 반드시 응답됩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기도할 때 응답받습니다.  기도의 장소는 그리스도 안이고 교회 안입니다.  믿는 사람은 호흡처럼 기도하지만 특별한 기도의 장소는 언제나 교회당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백성이 만나기로 지정된 장소입니다.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사 56:7, 막 11:17) 예수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집인 교회에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시고 교회를 위하여, 교회에 유익한 기도 제목에 반드시 응답하시고 당신의 영광을 들어내십니다.

   기도는 천연덕스럽게 해야 합니다.  얼굴 두껍게 기도해야 합니다.  아 8장에서 신부 술람미가 신랑 솔로몬에게 아주 뻔뻔스럽게 구합니다.  “바알하몬에 당신의 포도원이 있고 그 연수입이 천이지 않습니까? 그것의 1/5, 이백을 친정오빠에게 주세요”  남이 볼 때 뻔뻔스럽지만 신랑이 보기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이에는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사이에는 구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구할수록 사랑을 받습니다.  믿고 신뢰해주니 기쁩니다.  주면서도 기분이 좋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이 술람미에게 대답합니다.  “너 동산에 거주하는 자야 친구들이 네 소리에 귀를 기울이니 내가 듣게 하려무나”  나는 당신의 소원에 응답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당신의 기도에 응답해 준 사실이 소문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주님께 마치 베개 밑 송사와 같습니다.  사랑하는 이는 사랑하는 이의 간구를 물리치지 못합니다.  무시하지 못합니다.  도리어 그 간구를 믿음과 사랑으로 간주합니다.  

   예수님은 눅 11장에서 주기도문을 가르친 후 한 예를 들었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벗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벗이여 떡 세 덩이를 내게 꾸어 달라 내 벗이 여행 중에 내게 왔으나 내가 먹일 것이 없노라 하면 그가 안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실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 하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 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강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5-8).  그렇습니다.  귀찮아서라도 주고, 더욱 착한 목적으로 구하니 주고, 친구와 사랑하는 신부이기 때문에 주시고야 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담대하게 기도하십시오.  남이 볼 때 뻔뻔스럽게 구하십시오.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리게 되어 있다”(마 7:8)는 진리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기도할 때 우리 마음에 항상 걸리는 것은 내 죄가 많다는 것입니다.  내가 잘못한 것이 많은데 하나님이 들어주실까, 예뻐해 주실까? 근심이 생깁니다.  바울 사도는 하나님의 용서와 인자하심에 대하여 아주 강한 톤으로 신자의 확신을 피력합니다.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33절).  이사야 선지자도 강하게 천명합니다.  “나를 의롭다 하시는 이가 가까이 계시니 나와 다툴 자가 누구냐 나와 함께 설지어다 나의 대적이 누구냐 내게 가까이 나아올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리니 나를 정죄할 자 누구냐 그들은 다 옷과 같이 해어지며 좀이 그들을 먹으리라”(사 50:8-9).  그래도 긴가민가한 분들을 위해서 사도는 현재의 주님의 모습을 그려보입니다.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34절).  모든 만물의 존재적 근원으로써 참 존재성을 지탱하시는 그분께서 우리 죄의 사유를 위해 지금도 기도하고 계시는데 무엇이 걸립니까?  성령은 우리 연약한 삶을 위해 간구하시고, 성자는 속죄받은 성도를 위해 변호하시고 탄원하십니다.  죄의 고발 한 건, 한 건마다 주님은 자신이 성취한 구속사역을 근거로 하여 자기 백성의 무죄를 확정해 주십니다.  주님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 죄과를 도말하시는 일을 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회개할 때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할 때마다, 우리 죄과는 사라지고 주님의 의로움이 들어납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 용서받은 만큼 주님을 더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 세상에서 신자의 삶은 종일 주님을 위하여 죽임을 당하는 것과 같고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는 것과 같습니다.  세상은 예수 믿는 사람을 싫어합니다.  미워합니다.  이용하고 배신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빛으로 소금으로 살도록 부름받았습니다.  깨끗해야 하고 정직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착한 행실을 보여야 합니다.  전도하기 위해 희생해야 합니다.  인내해야 하고 친절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 전도를 위해 협력하고 봉사해야 합니다.  교회당도 딜라잇 센터도 건축해야 합니다.  저는 가끔 왜 나는 허구한 날 교회당만 지어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고 문득 훨훨 날아가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그럴 때는 오늘 본문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37절) 사랑하기 때문에 나에게 이런 큰 짐을 맡겼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십니다.  실패할 자에게 일을 맡기지 않습니다.  도망갈 자에게 당신의 귀한 일을 부탁하지 않습니다.  내가 해낼 수 있을 만하기 때문에, 내게 끝까지 그 일을 수행할 만큼 은혜를 베푸실 것이기 때문에 나에게 그 일을 맡기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에게 맡기신 가족의 짐, 나라의 짐, 직장의 짐, 교회의 짐이 무겁습니까?  나를 사랑하시는 그분이 나를 신뢰하심으로 맡겼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그 모든 일을 감당할 만큼 은혜를 베푸신다는 약속을 믿읍시다.  이 모든 일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숙제를 주시면 숙제를 풀 능력도 주십니다.  환난을 허락하시면 그 환난을 이겨낼 믿음도 주십니다.  무거운 짐을 메우시면 그 짐을 능히 메고 갈 힘도 주십니다.  그래서 그 짐을 다 지고 난 다음, 그 과제를 다 끝내고 난 다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나를 사용하셨음을 깨닫게 됩니다.  할렐루야!  세상에서 당하는 환난, 곤고, 핍박, 기근, 적신, 위험, 칼을 두려워 마십시오.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길 것입니다.  사망, 생명, 천사들, 권세자들, 현재 일, 장래 일, 능력, 높음, 깊음, 다른 어떤 피조물을 겁내지 마십시오.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너무나 확실하게 이기도록 되어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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