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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08일 / 하나님의 목적을 섬기는 삶
사도행전 13:36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친히 다스리고 경영하는 나라입니다.  그 나라의 법은 하나님의 마음에 있었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표명됩니다.  하나님 나라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하나님은 그 목적 때문에 인류를 창조하셨고 또 죄 가운데서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한 하늘나라만 아니라 mini 천국인 이 세상과 교회 가운데서 지금 역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하늘과 땅이 오늘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변할 수 없는 하나님의 목적(God's purpose)입니다.  다윗은 변할 수 없는 하나님의 목적을 당대, 즉 다윗이 살았던 한정된 특정한 시대에, 다시 말해 늘 변하는 현실 속에서 섬겼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경륜, 그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예정된 수순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은 각 시대에 여러 사람들을 세우시고 역사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하나님의 친 백성입니다.  바울 사도는 딛 2:14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창조함을 받은 모든 존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삽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입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목적을 위하여 삽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위하여 꿈을 꿉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며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믿음의 분량대로 꿈을 주시고, 하나님의 백성은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대로 꿈을 꾸고 그림을 그리고 기도하고 말합니다.  욜 2:28, 행 2:17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예수 믿는 모든 성도는 하나님을 위하여 꿈을 꾸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을 꾸고 그 꿈의 성취를 위하여 가진 것을 잃기도 하고, 그 꿈이 이루어질 때까지 결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꿈을 주셨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 12:2) 너는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창 18:18)”  야곱과 요셉에게는 어떤 꿈을 주었습니까?  열두 지파가 태어날 것이고 천하 만민의 공급자가 되고 축복의 장자가 되리라는 꿈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꿈, 하나님의 자녀가 꾸는 꿈의 특징은 온통 크고 우주적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단지 이 땅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을 두고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 꿈의 한 부분, 영원한 목적의 한 부분이 이 땅 위에서 성취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크고 영원한 목적에 수렴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꿈은 언제나 크고 우주적인 성격을 띨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의 족장들은 그 꿈을 성취하는 동안 실패도 많이 했고 조급한 마음으로 일을 그르친 경우도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고비를 지낼 때마다 믿음의 경주를 하고 있는 그들에게 하나님은 깨우침을 주시고, 다시 일으켜 세우사 끝까지 믿음의 길을 달려가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종종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어 드리는 삶이란 것을 깡그리 잊습니다.  세상 일에 시달리다 보면 자기도 몰래 이 세상 중심이 돼버립니다.  집을 사고파는 일, 진학하고 취업하는 일,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 장사지내고 사교하는 일, 사람을 만나고 기쁘게 하는 일이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과 상관없이 한참 나아갑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일에 몰두해야 하고  하나님의 뜻을 우선해야 합니다.  하늘나라의 쟁기를 잡은 사람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지 말아야 합니다(눅 9:12).  롯의 아내처럼 세상에만 집착해선 안 됩니다.  젊음을 허비해선 안 됩니다.  ‘나는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섬기고 있다’는 정체성을 다짐하고 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갈 6:9에서 권면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우리에게 있는 선은 하나님의 목적을 섬기는 삶입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내가 살며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내가 존재한다는 이 진리가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웁니다.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입니다.  믿음 있는 용기는  큰 꿈을 꾸는 방법을 통하여 자랍니다.  문제는 종종 그 꿈의 수준이 낮고, 그 꿈을 빨리 성취하려는 조급성에서 발생합니다.  우리나라 날림공사들을 보세요.  빨리빨리 한국병이 전면적인 부실경영과 그 증상이 곳곳에서 들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이루는 데는 조급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이루지 못하면 다음 세대가 이루면 됩니다.  우리는 큰 꿈, 거룩하고 우주적인 꿈을 성취하기 위하여 쟁기를 놓지 않고 계속 일해야 합니다.  포기하지 말고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때가 되면 하나도 남김없이 거둘 것입니다.  주께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시고(시 62:12, 마 16:27)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안겨주십니다(눅 6:38).  끝까지 기다리고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습니다(마 10:22).  도움을 받고 기적을 체험합니다.  사람들은 보통 8명의 비판자 때문에 낙심한다고 합니다.  교역자도 교역을 중도지폐합니다.  인간의 위대성은 교육과 재능과 부귀에 있지 않습니다.  그를 낙심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를 낙심하게 만드는 그것이 그의 위대성을 시험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빛 가운데 보여주신 것을 어둠 가운데서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신자는 포기하지 않는 한 실패하지 않습니다.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납니다(잠 24:16).  하나님이 이 땅 위에서 한번 주신 삶을 온전히 주인께 바치며, 오직 그분을 위하여 그분의 목적을 섬기기 위하여 헌신합시다.  삶을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것이 신자의 위대성입니다.  ‘나는 결코 내 주님을 위하여 사는 삶을 포기하지 않겠다’ 그것이 우리가 주님께 고백할 수 있는 최고의 찬양임을 명심합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포기할 수 없는 큰 꿈을 주시되 먼저 작은 일에 충성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신자들은 누구나 큰 꿈을 꾼다는 면에서 똑같이 위대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각자에게 요구하시는 작은 일들에 충성하고 만족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당신의 목적을 섬기는 종으로 사용하기 전에 먼저 정직하고 겸손하게 만드십니다.  하나님 앞에 정직하고 겸손한 사람이야말로 하나님께 능력을 받은 사람입니다.  대하 16:9에 선견자 하나니가 유다 왕 아사에게 말씀을 대언합니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느니라”  하나님 앞에 정직하고 겸손한 사람이 되십시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찾아서 당신의 목적을 섬기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제일 관심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나의 personality, character에 초점을 맞추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겸손하고 정직하게 만들기 위해 먼저 많은 비난의 대상이 되게 하십니다.  순수한 동기가 의심의 대상이 되고, 기도 외에는 풀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아주 미련한 실수를 범하게 하십니다.  내가 노력한 것 가지고 다른 사람이 칭찬받게 하십니다.  신자가 이런 일들을 당하면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겸손이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이고, 정직이란 나의 연약에 대하여 변명하지 않고 솔직한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나는 완전하지 못하며 완전해질 것을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나의 일을 통하여 누가 칭찬받든지 염려하지 않습니다. 단지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에 쓰임 받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이런 사람을 하나님이 쓰십니다.  소용돌이가 사람들 속에 일어날 때 ‘하나님이 나의 교만을 들어내시는구나’하며 근신하는 사람, 그런 사람을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끌어내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무엇을 할까, 무슨 일을 할까?’보다는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사람이 될까?’를 먼저 고민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하고 정직한 자를 낮추시고 난 다음 높여 쓰신다’는 원칙에 주목하십시오.  일반적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쓰임 받기 전에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은 나 자신이 너무나 누추하며 또한 무능력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기에는 조금도 합당치 않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모세도 그랬습니다.  이사야와 바울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맞아, 너는 구원받을 자격도 없어! 그러나 네가 그렇게 반응하기 때문에 나는 너를 나의 은혜를 찬송할 그릇으로 택한 거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념하는 Trophy일 따름입니다.  “내가 내 교회를 세운다고 하지 않았느냐? 너는 내 교인을 섬기는 거야. 내가 이 교회의 목자야, 너는 나의 일을 내가 허락한 시대에 수종드는 종일 따름이야!”  그래서 저와 여러분은 이 시대에 하나님이 쓰시는 종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도 우리에게 있는 이 담대함을 빼앗아가지 못하게 하십시오.  이 담대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진정한 리더십은 오직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믿음 때문에 생깁니다.  은혜가 무엇입니까?  내가 저지를 평생 실수를 다 아시고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믿으십시오.  사탄은 어려운 상황을 지적합니다.  과거의 기억을 회상시킵니다.  그럴 때 여러분은 사탄으로 하여금 그의 앞날을 기억나게 하십시오.  절대로 기죽지 마십시오.  한 걸음도 뒤로 물러서지 마십시오.  우리 하나님은 평범한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완전한 사람이나 Superstar를 찾고 계시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르실 때의 확신을 다시 회복하십시오.  여러분의 소명을 다시 기억해 내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자격 때문에 부르시지 않았습니다.  은혜 때문에 불렀습니다.  일의 규모와 중요성이 꼭 비례하지 않습니다.  유명한 것과 그 중요성이 비례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는 모든 일이 다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원하시는 때,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에 우리를 배치하십니다.  사람이 알아주고 알아주지 않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합니까?  진정한 관중은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  여러분이 무슨 일을 하든지 그것이 하나님의 목적에 관계된 일이라면 과소평가하지 마십시오.  무슨 일을 하든지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가 됩니다(롬 14:23).

   우리들의 삶과 사역에서 하나님은 무엇을 기대하시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나를 당신의 목적에 사용하실 것을 내가 기대하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내가 기대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용하십니다.  우리가 사는 세대는 대부분 우리가 주체할 수 없는 상황이 지배하고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주체할 수 있는 한 가지는 ‘내가 하나님을 얼마나 믿을 것인가?’라고 선택하는 것입니다.  아무도 나를 대신하여 하나님을 믿어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아침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얼마나 너를 축복할 것인가? 를 네 자신이 결정하라!”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목적을 섬기는 삶’이란 발견은 정말 위대한 것입니다.  엿새 동안은 주일을 위하여 준비하는 기간입니다.  천지창조의 목적은 안식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구속의 목적도 하나님 안에서 쉼을 얻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이 주제가 되는 날이며 하나님을 높이는 날입니다.  창조의 목적이나 구원의 목적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신자에게는 안식일이 삶의 목적입니다.  푹 쉬면서 하나님께서 나를 창조하신 목적에 부합되도록 나의 삶을 조정하는 날입니다.  삶의 목표! 그 자체가 바로 주일을 거룩하게 지내는 것입니다.

   다윗 왕을 보십시오.  그는 자기가 죽을 때, 세상을 떠날 때가 있다는 것을 알고 살았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명예와 물질에 매여서 살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의 삶의 목적이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 한순간 한순간이 겹겹이 쌓여 하나님의 마음에 꼭 맞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당대에 할 수 없는 일은 차세대가 할 수 있도록 준비하였습니다.  그는 그가 주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주체할 수 있는 한 가지,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목적을 섬기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 일이 끝났을 때 만족한 마음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성경이 그의 삶과 죽음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당대에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다가 죽읍시다.  예수님이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요 11:25)고 했는데 신자에게는 사실상 죽음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일에 목숨을 걸고 힘써 행하시되 실패일랑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단호한 믿음으로 끝까지 하나님의 목적을 섬깁시다.  여러분이 스스로 자기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위대한 성도입니다.  신구약 성도와 동일하게 위대한 성도가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었으면 떠나야지, 이 땅에 더 머무를 필요가 어디 있습니까?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나라보다 좋은 것은 없습니다.  해변에 밀려오는 파도를 보십시오.  파도가 밀려가면 해변에 여러 가지 더러운 것들이 보입니다.  그러나 조금 있으면 파도가 또다시 밀려옵니다.  한 세대의 주의 종들이 가고 나면 또 한 세대의 주의 종들이 옵니다.  각 세대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완전하지 못합니다.  실패도 많고 부족한 것도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말론적으로 주 예수께서 다시 오시는 것입니다.  청마 유치환의 ‘파도’란 이름의 시입니다.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주님 오실 때 그 파도치는 바다는 유리 바다가 될 것입니다(계 4:6, 15:2).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이 아름답게 성취되는 순간이 옵니다.  그날까지 우리 모두 한 사람도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이 보내신 곳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부지런히 섬기며 살아갑시다.  찬 302장, ‘내 주 하나님 넓고 큰 은혜는’을 찬송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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