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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0일 / 영광의 왕이 천국으로 돌아오심
시편 24:7-10

   오늘 본문은 우리의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시고 천국 문으로 들어오시는 장면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죽음과 부활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고 인류 구원의 대업을 성취하고 승천하시자, 천국은 기쁨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천국에 있는 모든 자들이 그분을 송축하고, 그분에 대한 자랑으로 가득합니다.  만왕의 왕께서 지구에 내려가셔서 당신의 죽음으로 사망을 폐하셨다는 것, 믿는 자에게 영원한 삶을 주셨다는 것, 어두움의 권세를 멸하시고, 그들의 모든 궤계를 물리치셨다는 것, 그분이 승리하고 천국으로 돌아오셨다는 것은 빅뉴스 중에 빅뉴스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천국 시민들의 입장에서 예수님의 승리와 승천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왕의 앞에 가는 왕의 사자가 외칩니다.  ‘문을 열어라’  그러면 안에서 문지기가 묻습니다.  ‘누구냐’  왕의 사자가 답합니다.  ‘왕이시다 승리를 얻고 돌아오시는 영광의 왕이시다’  그러면 즉시 문이 열리고 백성들의 외침 가운데 왕은 문을 통해 들어섭니다.  이 고대의 관습은 우리나라 옛날 관습과도 통합니다.  ‘게 섰거라, 뉘 없느냐’  ‘뉘십니까’  ‘대감이시다’  ‘에헴’하고 공적으로 권위 있게 주인으로서 또는 손님으로서 대문을 드나들지 않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천국 문에 도달하셨습니다.  그분을 호위하는 하늘 천사들이 외칩니다.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안에 있던 천사들이 묻습니다.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영광과 위엄을 찬양하기 위해 다시 묻습니다.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그러자 천사들이 다시 대답합니다.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그러자 거룩한 성 예루살렘의 열두 문이 저절로 열립니다.  진주 문은 장엄하고 영원하겠지만, 그분에게 비하면 초라하고 비천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늘도 그분 앞에선 초라합니다.  그래서 천사들이 외칩니다.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하늘나라의 문은 영원한 문입니다.  이 문이 영원히 존재하기 때문에 영원하고, 또 이 문은 영원한 생명을 가진 자들을 위한 문이기 때문에 영원합니다(J. Boyce).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마치 강렬한 음악처럼 이런 대답이 터져 나옵니다.  벌레처럼 탄생하고, 양처럼 고난받고 사자처럼 다시 일어선 그분은 이제 독수리처럼 하늘로 올라오신 것입니다.  

   우리는 여호와께서 싸우신 전투를 통해 그분의 능력을 압니다.  그분은 죄와 사망과 지옥에 대해 승리하셨습니다.  천사는 그분께 잡힌 바 된(빌 3:12) 포로들을 보면서 그분께 박수를 보냅니다.  신자는 모두 그분의 하늘나라 포로로써 그분을 따라 천국에 들어섭니다.  이제 천국에는 사람들이 거하기 시작하고, 사람들은 별들 가운데로 걸어 다닙니다.  이제 하늘의 예루살렘에는 교회의 왕과 대제사장으로서 온 세상을 다스리는 분이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좌정하십니다.  성도는 마음과 힘을 다해 그분께 찬양을 돌립니다.  “하나님께서 즐거운 함성 중에  올라가심이여 여호와께서 나팔 소리 중에 올라가시도다 찬송하라 하나님을 찬송하라 우리 왕을 찬송하라 하나님은 온 땅의 왕이심이라 지혜의 시로 찬송할지어다 하나님이 뭇 백성을 다스리시며 하나님이 그의 거룩한 보좌에 앉으셨도다 뭇 나라의 고관들이 모임이여 아브라함의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다 세상의 모든 방패는 하나님의 것임이여 그는 높임을 받으시리로다(시 47:5-9) 능하신 분이시여 당신은 모든 왕의 왕이시고 또 모든 주의 주시니 면류관을 받으시옵소서”  영광의 왕께서 영원한 영광으로 들어가실 때 어떤 천사장의 혀로 다 찬양드릴 수 있겠습니까?  지금까지 하늘에는 이처럼 기쁜 때가 없었습니다.  

   시편 97:7과 벧전 3:22에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외아들을 이끌어 이 세상에 다시 들어오게 하실 때에 모든 하나님의 천사들이 그에게 경배한다(히 1:6)고 말씀합니다.  과연 그분이 육신을 입고 사람의 연약한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실 때에 거룩한 천군 천사들이 홀연히 나타나 노래했었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 2:14).  그런데 이제 그분이 온전한 승리를 거두시고 사람을 온전히 구속하신 후 천국으로 돌아오실 때 얼마나 성대한 환영을 받으시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사망과 지옥을 이기시고 승리자로써 돌아오실 때 천사들이 그분을 어떻게 맞이하겠습니까?  그분에게 수종하는 천천의 천사, 그분 앞에 시위하는 만만의(단 7:10) 천군들이 주님을 찬양합니다.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계 5:12-13).  그렇다면 이제 우리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할 차례입니다.  “내 영혼아 너는 어찌하여 하늘의 노래를 함께 부르지 않는가? 내 영혼은 어찌하여 크게 즐거워하지 않는가? 사람이 되셨다가 하늘의 모든 권세보다 더 높임을 받으시고, 천사들과 천사장들의 경배를 받으시며 무한한 영광과 위엄의 면류관을 쓰고 앉으신 그분을 인하여 왜 즐거워하지 않는가”(Joseph Hall).

   7,8절과 9,10절은 내용이 똑같습니다.  반복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조금 다릅니다.  7,8절에서 승천하신 주님은 ‘강하고 능한 여호와, 전쟁에 능한 여호와’신가 하면 9,10절에서 승천하신 주님은 만군의 여호와십니다.  시인은 주님께서 두 번 승천하실 것을 마음에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는 두 번 죄를 위한 희생제물이 되실 필요가 없습니다.  승천하신 주님은 다시 죽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그분이 이 세대의 마지막에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이 세상에 오신다면 그분은 다시 올라가셔야 합니다.  이 시에서 두 번째 영원한 문들에게 문을 열라고 명한 것은 영광의 왕께서 두 번째 올라가실 것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중보하기 위해 하늘 아버지의 우편으로 승천하실 때에는 ‘전쟁에 능한 여호와’라고 하지만 세상을 심판하시고, 선인과 악인을 영원히 구분하신 후 두 번째 승천하실 때에는 ‘만군의 여호와’라고 합니다.  왜 하나님의 이름이 이처럼 바뀝니까?  그 이유는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시고 다시 올라가시는 목적이 두 번에 걸쳐 각각 다르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첫 번째 오실 때는 겸손히 혼자 오셨습니다.  천사들이 그분을 둘러섰지만 큰 영광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사망과 지옥과 사탄과 더불어 홀로 싸우셨고 죽음에서 일어나셨습니다.  약 2:1에 ‘이 영광의 주가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곧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라면 그리스도는 누구십니까?  그분은 자기 원수들을 정복하사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히 1:13).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라(히 2:14-15)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롬 5:21) 이제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딤후 1:10)”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예수님은 사망을 이기시고 사망의 감옥인 무덤도 이기셨습니다.  마귀와 사망의 영역인 지옥도 정복하셨습니다.  그리스도가 바로 영광의 왕이십니다.  그분은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던 것처럼, 또한 우리로 의롭다 하심을 얻게 하시려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분은 또한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시려고 승천하셨습니다.  이 땅에서는 은혜를 선물로 주시고, 다음 세상에서는 영광을 선물로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그분의 전투를 수행할 때에 우리는 오직 그분으로 말미암아 원수에게서 구원받습니다.  넉넉히 이기는 승리자가 됩니다(고전 15:27, 롬 8:37).  신앙생활이란 하나님을 위한 자기와의 싸움입니다.  구원받아 하나님의 백성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삽니다.  사랑이란 with God, with poeple, 즉 하나님과 이웃과의 교제입니다.  풍성한 삶이란 풍성한 관계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요 10:17)”  사랑하는 여러분, 행복하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이웃을 사랑하십시오.  많이 사랑하는 자가 많이 행복합니다(Erich Fromm).  많이 사함 받은 자가 많이 사랑합니다.  왜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무시당하고 비참해집니까?  왜 공허함을 느끼고 외롭습니까?  관계에서 의미를 찾지 않고 소유에서 의미를 찾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감정과 욕망 성취의 우상숭배자들입니다.  베드로가 그 흉내를 내다가 시험에 빠집니다.  베드로는 자기 기분이 좋은 대로 살기를 원했습니다.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마 17:4).  그는 산 아래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기 싫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 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실 때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들고 항변했지요.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예수님께서 돌이켜 베드로에게 말씀합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마 16:21-23).  베드로는 관계에서 의미를 찾지 않고 소유에서 의미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는 세상을 사랑했습니다.  예수님도 사랑했지만 섬김의 대상이 아니라 소유의 대상으로 사랑했었습니다.

   예수님이 제 맘에 들지 않는 말씀을 하시면 그는 주님조차 비난하고 비평합니다.  주님까지도 지배하는 상전이 되고 독재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주께서는 베드로의 배후에 사탄이 있고 세상 신이 그를 속이고 있음을 간파했습니다.  “마귀야 내 뒤로 물러가라 베드로야 세상 사랑과 자기 우상이 가득한 너와는 대화가 불가능하구나 모든 것을 움켜잡는다고 다 네 것이 되는 것이 아니다 욕심과 집착을 버리고 네 분복이나 누리고 네 분깃이나 지켜라”  예수님은 먼저 마귀를 꾸짖으심으로 베드로를 시험에서 건지시고 악에서 구원해 주십니다.  마귀는 언제나 정욕적이고 세상적입니다.  다툼을 일으키고 의심과 불안을 조성합니다.  야고보 사도가 말씀합니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약 4:2-3)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약 1:6-8)”

   이 세상의 모든 일은 알고 보면 하나님을 위한 일이고 또 사람을 위한 일입니다.  공부하는 것, 직장과 사업, 결혼과 자녀 기르기 모두가 하나님이 내게 주신 과제요 싸움입니다.  우리는 이 싸움에서 믿음과 사랑으로 승리해야 합니다.  내 감정과 욕망을 위하여 하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의 행복을 위하여 해야 합니다.  소유를 위해 살지 말고 관계를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싸움에서 승리하셨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심으로 승리하신  전쟁과 싸움에 강하고 능하신 그분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마 16:24-27).

   예수님이 우리 위해 당신의 생명을 버리셨음으로 우리가 얻게 된 것이 무엇입니까?  무궁한 생명과 함께 하늘과 땅의 영광스런 왕의 지위를 얻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내 감정, 내 욕망, 내 육체를 위하여 심으면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지만 우리가 주의 영광과 이웃사랑, 하나님 관계와 사람 관계를 위하여 성령으로 심으면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둡니다(갈 6:8).  이 싸움에서 아무도 남을 탓할 수 없는 것은 그 관계를 끊는 것이 남이 아니요 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회개하지 않고 고집을 피우기 때문에 멸시받고, 내가 사랑하지 못하고 원망하기 때문에 버림을 받습니다.  내가 주지 못하고 투기하기 때문에 관계가 무효가 되고 마침내 바깥 어두운 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는 것입니다(마 22:13).  Arnold Toynbee(1889-1975)는 역사를 ‘도전에 대한 응전’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교회적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도전에 응전함으로써 구원 역사에 참여합니다.  하나님 관계와 사람 관계,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가장 이상적인 장소는 교회입니다.  교회 같은 가정이요, 가정 같은 교회입니다.  교회의 사역은 하나님 앞에서 공동수상의 대상이 됩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가장 작은 달란트라도 교회 은행에 맡기면 가장 비싼 이자를 받습니다.  전도사랑방과 야곱의 식탁에 힘을 집중합시다.  교회교육과 찬양사역에 힘을 기울입시다.  21C 초엽에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도전에 응전하심으로 우리 모두 승천의 날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을 받읍시다.

   예수님께서 두 번째 오시고 다시 올라가실 때는 만군의 여호와로 나타나십니다.  세상에 첫 번째 오실 때처럼 혼자 숨어서 오시지 않고, 공개적으로 하늘의 군대와 함께 오십니다.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십니다(마 16:27).  마리아의 자궁에서 소리 없이 지내시고, 나사렛에서 조용히 사시던 것과는 달리, 그분이 다시 오실 때에는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가 울릴 것입니다(살전 4:16).  이처럼 그분은 만군의 여호와로서 다시 오시고, 만군의 여호와로서 다시 아버지께로 가십니다.  이 땅에서 심판을 베푸신 후에 그분은 다시 영원한 문을 통하여 이전보다 더 많은 신자들을 데리고 천국으로 들어가실 것입니다.  계 21:26에 그분과 함께 많은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주신 도전과 과제가 트로피와 영광으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만군의 여호와께서 곧 영광의 왕이시로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한 하늘 군대의 하나님, 사람들과 천사들의 주님, 온 우주와 온 세상의 주님, 그분이 영광의 왕이십니다.  참된 하나님께만 진정한 영광이 있고 다른 모든 영광은 사라지는 것들입니다.  잠시 동안 겉치장을 하고 허세를 부리는 것에 불과합니다.  승천하신 구세주는 온 우주의 머리시고 면류관이시며 영광의 왕이십니다.  나사렛 예수, 그분이야말로 강하고 능한 여호와, the Lord strong and mighty이시오, 전쟁에 능한 여호와, the Lord mighty in battle이시오, 또한 만군의 여호와, the Lord almighty이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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