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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7일 / 성도의 하룻길 인생
시편 23:1-6  
                     
   우리의 인생은 하루하루의 연속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벧후 3:8)고 했고,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시 90:4)고 했습니다.  시 23편은 우리의 일생, 주님과 함께하는 평생을 노래한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들의 하룻길 인생을 노래한 것이기도 합니다.  시인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는 믿음의 선언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주님께서 오늘 하루의 주인이시오 또한 나의 주인이시니 내가 부족함이 있을 까닭이 어디 있느냐? 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절대 긍정의 신앙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링컨은 ‘사람은 모두 자기가 결심한 만큼 행복해진다’고 했고, 스텐리 부인은 ‘만족하게 살며, 많이 웃고,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성공한다’고 했습니다.

   시 23편만큼 암송대회용 시편으로 많이 알려진 성경은 없지요.  어느 고등학생의 암송 에피소드는 유명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리고 잊어버렸습니다.  다시 외우겠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래도 생각이 안 났습니다.  다시 외우겠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렇게 몇 번 반복하다가 갑자기 그 의미가 깨달아졌습니다.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하나님, 전능하시고 무한하신 그분이 내 인생길에 목자가 되어 주신다면 내게 무슨 부족함이 있겠는가’  그가 큰 소리로 암송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십니다. 그러므로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상 끝’  부족함이 없는데 더 외울 필요가 어디 있느냐? 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에게는 돈이 목자고, 쾌락이 목자고, 권력이 목자인 줄 압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인생의 목마름을 결코 해갈시켜 주지 못합니다.  여호와 하나님, 영원하신 자존자, 전지전능하시고 우리를 목자처럼 아끼시고 인도하시고 사랑하시는 그 분 안에서만 다시 목마름이 없습니다.  

   나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소유해야 행복하겠는데 모든 것을 소유할 수 없어 불행했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소유할 수 있는 길을 발견했습니다.  모든 소유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소유함으로 모든 것을 소유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나는 어리석고 약하고 방향감각을 쉽게 잊어버리고, 쉽게 더러워지는 양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길을 잃었고, 멸망 길로 내달렸습니다.  그런데 선한 목자이신 여호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찾아오사 내가 짊어진 죄의 짐, 인생의 굴레를 당신이 짊어지시고 피를 흘려 목숨을 버리시고 나를 구원하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말씀합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6).  할렐루야!  여호와 하나님은 선한 목자십니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십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얼마나 핍절함이 많습니까?  무엇이든지 좀 더 많으면 좋겠다는 것이 우리의 속마음이 아닙니까?  그런데 시인의 영안이 열리자 그가 본 것은 하나님의 무한한 부요와 능력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무한한 자비와 선하심이었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외칩니다.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에 비하면 너무나 작은 세계입니다.  우리가 산 50년은 하나님 나라에서는 몇 초에 지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인류가 살아온 역사는 너무나 짧은 순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외칩니다. ‘내게 궁핍함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세상에서 우리가 원하는 것, 눈이 원하는 것, 마음이 원하는 것 다 가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여기가 좋사오니’가 안 되겠습니까?  ‘여기가 좋사오니’가 되면 또 어떻게 되겠습니까?  시기와 다툼과 자랑과 욕심이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희생을 배워야 합니다.  겸손을 배워야 합니다.  이 세상이란 구조 속에서 인내를 배우고 섬김을 배워서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성장해가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궁핍을 허락하셨습니다.  성도에게는 상대적인 결핍이 있지만 절대적인 빈곤은 없습니다.  주 안에는 모든 것이 있고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신자에게 비교적인 결핍감은 있지만 무제한적인 빈곤감은 없습니다.  바울 사도가 말씀합니다.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내가 궁핍함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8, 11-13).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다 주시지는 않아도 꼭 필요한 것을 주시지 않은 적은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종이요 심부름꾼입니다.  주시면 쓰고 심부름하고, 안 주시면 안 쓰고 안 하면 됩니다.

   목자는 양들에게 반드시 아침 식탁을 베풀어 주십니다.  목자는 양의 실존적인 요구를 거절하신 적이 없습니다.  양은 풀과 물을 필요로 합니다.  선한 목자는 푸른 초장, 초장동으로 인도하시고 쉴 만한 물 가, 송도 해변으로 인도하십니다.  양은 두려움을 느끼거나 배고플 때에는 결코 눕는 일이 없습니다.  죄에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쫓아버립니다.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평화는 죄 사함의 평화입니다.  정죄함이 없습니다.  두려움에서 해방되고 안식을 누립니다.  부모님의 마음이 가장 민감할 때가 언제입니까?  아이가 배고프다고 보챌 때입니다.  배고프다고 하면 만사를 제치고 내 새끼 먹여야 되겠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1998년 Ben Smith 목사님이 Africa Gana의 성도들이 배고프다고 설교하면서 70만 원을 청원했는데 175만 원이 헌금되었습니다.

   목자의 최대관심사는 양들을 배불리 먹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지요.  “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눅 6:21)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마 5:6)”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성도로 만족하게 하고 배부르게 합니다.  포만감을 느끼며 편히 눕게 합니다.  진리의 말씀이 우리를 기쁘게 합니다.  인애의 말씀이 우리를 위로합니다.  약속의 말씀이 우리로 힘 있게 합니다.  우리가 주일 아침에 하나님의 말씀을 먹으면 또 한 주간 주의 이름을 위하여 살아갈 용기와 힘을 얻습니다.  새로운 삶을 위한 새로운 에너지를 얻고 새로운 하루의 과제 앞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목자는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하기 시작합니다.  의의 길은 평안의 길이 아니라 바른 길입니다.  의의 길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길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입니다.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길이며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길입니다.  의의 하나님이신 목자께서 그 길을 걷는 양들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래서 당신의 이름과 명예를 걸고 우리를 의의 길, 복된 길, 평강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들어내는 것이야말로 우리를 만드신 목적이요 구원하신 목적입니다.  여기 인도하신다는 말, lead, guide는 강제로 다스리지 않고 존중한다는 뜻입니다.  끊임없이 우리를 설득하시고 부드럽게 촉구하신다는 뜻입니다.  억지로 할 수 없이 하는 것도 안 하는 것보다야 낫지만 좋아서 즐거운 마음으로 하는 것이 훨씬 복 됩니다.  성도의 삶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통치를 기뻐하고 기도하며 순종하는 삶입니다.

   의의 길은 넓은 길이 아니라 좁은 길입니다.  정욕적이고 세상적이고 마귀적인 길이 아니고 영적이고 금욕적이고 절제가 있는 길입니다.  그 골짜기에는 마귀의 시험이 있고 공격이 있고 유혹이 있습니다.  가난과 능욕이 있고 박해와 곤란이 있습니다.  고통스런 질병이 있는가 하면 인간관계의 균열도 있습니다.  이와 같은 불 시험을 당할 때마다(벧전 4:12) 우리는 죽음을 연상하고 두려움에 짓눌립니다.  그러나 우리는 곧장 믿음으로 그 시련을 이겨냅니다.  사망의 어두운 그림자를 가로질러 나옵니다.  내가 어려울 때마다 주님은 내 곁에 꼭 함께하십니다.  지팡이를 가지고 나를 구렁텅이에서 끌어올려 주시고, 말을 알아듣지 못할 때는 톡톡 쳐서 제 길로 갈 수 있도록 신호를 보내주십니다.  기도할 때마다 용기와 격려를 주시고 지혜와 능력을 베풀어주십니다.  내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이 닥쳐올 때는 피할 길을 열어주십니다.  원수들에 대하여는 ‘네 이놈 물렀거라’하시며 막대기로 용감히 싸워주십니다.  

   신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죽는 순간 주께서 우리를 가슴에 안으시고 요단 강을 건네주실 줄 믿습니다.  하물며 사망의 그림자가 있는 골짜기를 지낼  때겠습니까?  주님이 목자로서, 내 인생의 책임자로서 함께하십니다.  지도자로서, 안내자로서 함께하십니다.  이 세상에서도, 천국에서도 영원히 함께하십니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그 사랑과 임재의 증표입니다.  그것은 내 삶의 여정 속에 역사하시는 목자의 선하신 손길이요 친절한 팔입니다.  우리는 주일마다 그 은총을 기억하고 감사의 예물을 드리며 우리 자신을 기쁘게 드리며 봉헌합니다.  할렐루야!

   이렇게 양들은 힘겹게 하루를 살았습니다.  그러나 보람차게 하루를 살았습니다.  석양이 되자 목자는 양들을 불러 모읍니다.  수평의 널따란 바위 위에서 목자는 양들을 하나씩 안고 그들의 작은 손종에 대하여 상을 주십니다.  “너는 의롭게 살았구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구나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큰 것으로 네게 맡기리라”  그 머리에 기름을 바를 때 온 종일 목자 뒤를 따라 다니면서 받은 상처가 깨끗이 치유됩니다.  양떼들이 행복해합니다.  순진한 미소와 기쁨 속에 뒹굽니다.  “오 주님, 저는 마땅히 해야 할 것밖에 한 일이 없는데요”  목자는 양떼들을 위한 축제를 꼭 그 동안 양떼들을 공격해 온 원수의 목전에서 베풀어 주십니다.  원수는 꼭 이방인이고 세상 사람들만이 아닙니다.  집 안에도 원수가 있습니다.  개혁을 외친다고 다 개혁인사가 아닙니다.  내 편든다고 다 하나님 편이 아닙니다.  기성세대는 다 글렀고 새 세대는 다 옳습니까?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스스로 개혁해 가야 할 존재들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합니다.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내가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고전 4:3-4).  원수들도 보는 앞에서 하나님은 공명정대하게 심판하시고 평가하시고 상을 베푸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딤전 1:5)으로 행하십시오.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 5:17)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부지런히 열심을 품고 주님을 섬기십시오.  여호와의 일을 게을리 하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렘 48:10)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말은 참고하되 청종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다만 성경을 통하여, 강단을 통하여 들려오는 공평무사한 말씀,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청종해야 합니다.  좌면우고 하다 보면 상을 잃습니다.  부디 하나님의 말씀 따라 복종하여 칭찬과 존귀와 영광을 받으십시오.  하룻길을 행하고 목자의 위로와 상급을 받은 양은 충분히 행복하고 만족합니다.  양은 자기가 지금 안전지대에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하루를 인도하신 목자께 구원의 잔을 들고 약속의 은혜를 소리 높여 찬양하며 이렇게 다짐합니다.  “나는 좌절하지 않을 겁니다. 넘어지지 않을 겁니다. 주님께서 함께하시는 한 다시 일어나 천국까지 일직선으로 행하겠습니다. 오늘도 나를 도와주시니 감사합니다. 내일도 나를 인도하여 주소서”    

   하루 동안 목자의 선함을 맛보아 안 양은 그의 남은 생애에 대한 뜨거운 확신을 이렇게 피력합니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선하심은 한없이 주는 사랑입니다.  선하사 자기 목숨을 버려 우리의 생명을 대속하신 주님은 일용할 양식만 주실까요?  영생의 양식을 주실 줄 믿읍시다.  “오 주님, 주님으로 인하여 오늘 하루를 산 것처럼 영원무궁토록 이렇게 살 줄 믿습니다”  인자하심은 불쌍히 여기는 사랑입니다.  오늘도 내 죄를 씻겨주신 주님께서 내 평생 나의 죄 짐을 다 도말하시고 기억도 안 하실 줄 믿읍시다.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행 7:60)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그 크고 넓은 사랑이 날 구속하였습니다. 그 성실하신 목자의 사랑이 반드시 나를 떠나지 아니할 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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