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도제일교회



















담임목사 소개

설교방송

칼 럼


로그인 회원가입

야곱의 식탁, 축복과 대화가 있는 가정예배(헌정설교)
운영자 님의 글입니다. 2017-09-27 14:51:09, 조회 : 813, 추천 : 23

들어가며

        지금부터 6년 전, 2012년 2월 4일 금요일 저녁, 저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미국 LA의 한 정통파 유대인 가정에서 드리는 안식일식탁예배를 참관하게 된 것입니다. 평범한 미국의 40대 부부의 가정에 초대되었는데 10대 청소년부터 젖먹이 어린아이까지 5명의 자녀가 있는 다복한 가정이었습니다. 제가 초대된 그 안식일식탁예배에는 모두들 정장을 입은 것 외에는 별다른 초청인사도, 분위기를 띄우는 찬양도 없었습니다. 다만, 아버지가 초청한 친구 한 명과 함께 식탁에 둘러앉아 자연스럽게 ‘부모의 자녀 축복’이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아버지가 맏아들부터 한 사람씩 가슴에 안은 뒤, 손을 머리에 얹고 입을 귀에 가까이 대고 작은 음성으로 축복을 선언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아들 〇〇〇을 에브라임 같고 므낫세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딸 〇〇〇을 사라와 리브가 같고 라헬과 레아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며 한 사람씩 안고 우는 젖먹이까지 달래가며 축복하는 겁니다. 같은 순서로 어머니도 아이들에게 그렇게 한 다음, 촛불을 켜고 손을 씻으며 떡을 뗌으로 구약의 성전 제사를 재현했고, 정다운 대화와 격려가 있는 식사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축복이 있는 가정예배

        그 안식일식탁예배에서 제가 가장 인상적으로 봤던 것은 부모가 자녀를 축복하는 순서와 과정이었습니다. 저는 3대에 걸친 신앙 가정에서 자랐지만 제 부모님에게서 이렇게 정식으로 격식을 갖춰 축복을 받아본 적이 없었고, 제 자녀들에게도 제대로 축복을 선언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평소 교회교육의 최후의 보루가 가정이어야 하고, 이를 위해 어떤 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가정예배가 그것입니다. 그리고 ‘가정예배를 생기 있게 할 어떤 장치가 구약교회의 전통 속에 있지 않을까?’라고 기대하던 중에 부모가 자녀를 축복하는 것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때로부터 ‘이런 귀한 전통을 우리는 왜 놓치고 있었을까? 우리 교회와 가정에 되살려놓을 순 없을까?’라는 행복한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자녀를 축복하고 싶은 소원은 모든 부모들이 가진 심정인데 그 방법을 성경적 권위와 가정이라는 공동체적 의식 가운데 엄숙하게 실행한다면 자발적인 가정예배의 동력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이 믿음에서 시작된 확신을 성도들에게 어떻게 공감시키며 목회에 적용했는가를 최근에 발매된 ‘야곱의 식탁’(Jacob's Table)이 잘 보여줍니다.
        안식일식탁예배에서 본 부모의 자녀 축복은 실로 안수기도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었습니다. 그 이유로는 첫째, 자녀 축복이 너무나 자연스럽다는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어린아이를 안고 안수하는 것처럼 따뜻하고 아름다웠습니다. 둘째, 머리에 손을 얹고 귀에다 소곤소곤 들려주는 하나님의 말씀, 축복의 선언은 오늘과 같이 말씀을 잘 듣지 못하는 우리의 자녀들을 성경의 세계, 말씀의 교통 속으로 이끌 것입니다. 셋째, 가정에서 부모가 영적 권위를 가지고 자녀들을 축복하는 것은 부모에게 가장 특별한 경험이고, 자녀들에게도 평생 잊지 못할 영적 경험으로 축적될 것입니다.

축복문의 의미

        창 48:8-9에 “요셉이 그의 아버지에게 아뢰되 이는 하나님이 여기서 내게 주신 아들들이니이다. 아버지가 이르되 그들을 데리고 내 앞으로 나아오라 내가 그들에게 축복하리라”고 했고, 창 48:20에는 “이스라엘이 너로 말미암아 축복하기를 하나님이 네게 에브라임 같고 므낫세 같게 하시리라, in your name will Israel pronounce this blessing:May God make you like Ephraim and Manasseh”고 했습니다. 유대인은 이 축복문을 신통한 주문이 아니라 ‘제사장의 축복’과 또 다른 ‘자녀 축복의 장치’로써 사천 년 무게의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풍요로움은 서로 축복하고 축복받을 수 있는 능력에서 비롯됩니다. 풍요롭기 때문에 축복하고 축복받는 것이 아니라 축복할 수 있는 시간과 믿음 때문에 풍요로워지는 것입니다.

        왜 하필 야곱은 ‘에브라임 같고 므낫세 같고’라고 축복하라 명령했겠습니까? 첫째, 모든 복 가운데 사람이 제일 귀한 복이요 하나님의 영원한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그 어떤 축복도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자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유로운 인격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벧후 3:11의 “그러면 너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는 말씀에 이런 종말론적 기대가 담겨있습니다. 둘째,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서로 의좋은 형제였습니다. 이스라엘 족장들의 형제 사이는 늘 투쟁하는 관계였습니다. 그러나 야곱이 17년간 그들을 지켜봤을 때 기특하게도 서로 다투지 않았고 화목하게 살았습니다. 이스라엘 조상들 가운데 서로 싸우지 않은 첫 형제였습니다. 이들이 화목하게 지낸 까닭은 삶의 초점을 사랑의 공동체와 민족을 위한 선한 일이라는 보다 높은 목적에 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에 대한 관심보다 나눔의 흐름을 통해(행 4:32-37, 히 10:24) 공동체의 유익을 앞세웠기에 쉽게 하나가 될 수 있었습니다(요 13:34-35, 요일 4:12).

        셋째,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세속적인 환경 속에서도 늘 신앙적인 가치를 지켰습니다. 아버지 요셉은 17세에 형들에게서 애굽으로 팔려와 110세까지 무려 93년을 애굽에서 살았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에 걸맞은 삶을 살아냈습니다. 반면에 그의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애굽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다가 애굽에서 죽었지만 그들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애굽의 문화와 가치관 속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분명한 정체성을 가지고 그 정체성에 걸맞은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족장 야곱은 손자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축복할 때 이미 그의 후손들이 애굽 땅에서 오랫동안 살게 될 것을 알았기 때문에 언약의 차원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명령과 함께 삶의 방향을 제시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손들아 너희는 어디에서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어떤 대가를 지불할지라도 하나님의 언약 백성임을 잊어선 안 된다. 신앙은 실패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주 실패하지만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나 전진하는 것이다.” 유대인이 안식일을 지킨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그들을 지켰다는 후대의 평가처럼 역사적으로 유대인은 안식일식탁예배에서 부모의 자녀 축복을 통하여 자신들의 정체성과 존재감을 확인해 왔던 것입니다.

부연적 의미

        신약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께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아가야 합니다(요 14:14, 16:23). 그러므로 ‘야곱의 식탁’의 축복문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노라”로 마칩니다. 이는 만물의 회복자요 신구약을 온전히 성취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요 14:13). 이에 따른 유익은 첫째, 예수님으로부터 임한 하나님의 나라(고전 1:30)는 교회의 위임과 가정의 축복을 통해 그 완벽한 통치를 실현합니다(엡 1:23).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너는 복이 될지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창 12:2-3)는 축복의 선언은 그의 증손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만 아니라 그의 영적 후손들인 모든 신자에게 주어졌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로운 언약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건으로 성취되었고 그것이 신약의 교회에 위임되었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위임은 마 28:18-20의 지상명령으로, 가정의 축복은 신 6:4-9의 쉐마교육 명령의 정점인 ‘부모의 자녀 축복’으로 실현됩니다. 두 명령에는 성령의 능력과 함께하는 권세가 약속되어 있습니다(마 12:28, 요 1:12, 고전 4:20).

        둘째, 하나님과 부모와 자녀, 이 삼자가 원시적 삼각 형태로서 강렬한 영적 유대를 경험합니다. 부모와 자녀가 예수님의 기도 안에서 하나가 됩니다. 부모와 자녀와 손자의 신앙 3대가 원초적 사랑, 거룩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묶입니다.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요 17:10-11). 기독교 신앙이란 사실 교훈이나 도덕성의 차원이 아니요 실제로는 하나님과의 접촉(contact)에서 발생합니다. 모든 생명은 접촉을 통해 생겨나며 접촉 없는 성장은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는 창 2:7의 그림을 사도 바울은 고전 15:45에서 생령이 된 첫 사람 아담과 살려 주는 영이 되신 예수님을 대비시켜 설명합니다. 마치 콘센트에 플러그를 꽂듯이 인간은 말씀과 성령, 곧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으로 하나님과 접속될 때 비로소 생명의 부활과 신비한 연합을 경험합니다. 그러므로 그 친밀함의 상징으로써 부모의 안수 행위는 보이는 축복, 감각적으로 느껴지는 말씀의 관점에서 예전적인 성격이 있습니다. 가정예배에서 부모의 축복기도는 “네 조부의 하나님,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 곧 네 하나님이 되신다.”(신 6:2, 행 16:31)고 약속된 축복을 선언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보다 귀한 권위는 세상에 또 없습니다(출 21:15,17;신 21:18-21, 딤전 5:22). 이 축복의 권세를 부모와 조부모에게 되돌려줍시다.

        셋째, 삶의 모든 정황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고양하는 개혁주의 신앙의 강력한 실천 의지를 담아냅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고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라(빌 1:27)”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는 부모의 축복을 통하여 자녀들은 복음적 삶의 실천적 용기와 능력을 공급받습니다(마 5:13-16, 행 11:21). 자연과 세상이라는 하나님의 통치 영역, 즉 은혜를 베푸시는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약속이 실현되는 기적의 증인들이 되는 것입니다(신 28:1-19, 시 103:1-14, 고전 13:1-13). 이를테면 사랑하는 자녀가 신전 인격자로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형제간의 우애와 언약 백성의 정체성과 그에 걸맞은 삶, 그리고 고난을 극복하는 신앙의 ‘견고성(므낫세)’ 및 수고한 땅에서 언약 백성의 ‘번성함(에브라임)’을 간구한 것입니다(창 41:51-52). 또, 딸에게는 믿음의 족장들 부인의 이름으로 축복하는(룻 4:11) 것은 하나님의 언약이 사랑하는 딸과 딸이 생산할 믿음의 자녀를 통하여 이어지고, 그로 인해 이스라엘의 집이 세워지기를 기원한 것입니다. 저는 젊은 히브리 부인들의 ‘내가 남편을 지키고 자녀를 세운다’는 신앙적 긍지와 넘치는 자부심이 안식일식탁예배를 성공시켰다고 평가합니다. 구약성경에 새 왕이 즉위할 때마다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요 ◯◯◯의 딸이더라’는 소개가 29번이나 나옵니다. 자녀교육의 마지막 보루가 어머니란 뜻이 아닐까요?

교회에서 적용하기까지
  
        그렇다면 부모의 축복기도가 강조된 가정예배를 성도들에게 어떻게 공감시키며 교회와 가정에서 실현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두 가지 방법으로 실행에 옮겼습니다. 첫째, 교회에서는 2013년 3월 3일 주일 오후예배부터 매월 ‘3대가 함께하는 온가족예배’를 실시하였고, 가정에서는 매주 부모의 자녀 축복을 특징으로 한 ‘야곱의 식탁’이란 이름의 가정예배를 시작하였습니다. 안식일식탁예배는 유대인의 전유물이 아니라 구약교회의 아름다운 신앙 전통입니다. 구약교회의 예배적 요소가 예수님 이후 신약교회로 이어진 것처럼 구약교회에 있었던 가정예배의 좋은 요소를 신약교회의 가정예배에 회복시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그 요소가 바로 ‘축복’과 ‘대화’입니다. 이런 면에서 안식일식탁예배는 기독교 가정예배의 좋은 시사점(示唆點)이 될 것입니다(삼하 6:20).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녀 〇〇〇을 에브라임 같고 므낫세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노라.” 이렇게 생생한 부모의 음성과 손길로 축복받고 자란 자녀는 쉽게 잘못될 수 없고, 자신도 즐겁게 후손을 축복합니다(고후 1:11).

        둘째, 총회 차원에서 소개하고 진행한 일입니다. 제63회 고신총회(2013. 9. 24)에서 제가 총회장으로 취임하면서 고신총회의 새로운 정체성을 제시하며 ‘고신 성도들의 신앙생활 수칙’에 ‘제2항 가정, 온가족이 함께하는 가정예배(야곱의 식탁)로 신앙의 명가를 세운다.’를 포함시켰습니다. 고신총회 비전, 「고신총회 소개와 전망」(서울 ; 총회출판국, 2014)총회출판국, 2014, 4; 본서  면에 전문 게재.
. 그러므로 저는 ‘야곱의 식탁’이란 이름의 가정예배에 대해 설명할 의무를 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야곱의 식탁’을 제안한 목적은 정통파 유대인의 안식일식탁예배를 도입하려는 것이 아니라 구약성도들이 가정에서 행한 자녀 축복의 좋은 요소를 개혁주의 교회의 가정예배 가운데 되살리고자 함입니다. 이번에 발간한 ‘야곱의 식탁’ 개정판은 유대인에 대한 거부감을 가진 성도들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설득한 지난 5년간의 결과물입니다.

        많은 학자들이 가정예배의 당위성을 강조하면서도 쓸 만한 틀을 제시해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쉐마 이스라엘(신 6:4-9)’로 시작되는 교육명령의 꽃이요 정수인 구약교회의 안식일식탁예배를 주목했습니다. 그 결과로 송도제일교회는 부모의 자녀 축복에 방점을 둔 ‘야곱의 식탁’을 발간하여 초판 3쇄를 낸 후, 폭넓은 연구를 위해 고신총회교육원에 헌정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축복과 대화가 있는’ 성경적이고 현대적인 모델, ‘야곱의 식탁’이 머잖아 한국교회 가정예배의 대세가 되리라고 예상합니다. 가정교육전문가 리치 멜하임(Rich Melheim)은 부모의 신앙교육 핵심사역을 자녀와 일상을 함께 나누고(Share), 성경을 함께 읽으며(Read), 신앙적 대화를 하고(Talk), 자녀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기도해주고(Pray), 서로를 축복하는 것(Bless)이라고 주장합니다. Melheim, Rich. Holding Your Family Together: 5 Simple Steps to Help Bring Your Family Closer to God and Each Other. Baker Books, 2013.
. 고신총회 교육전문가들은 이러한 부모의 핵심 사역이 적절히 어우러진 모습을 ‘야곱의 식탁’이 잘 보여준다고 평가합니다. 조성국 외, 『오늘의 주일학교, 어떻게 할 것인가?』 천안: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교육원, 2017, p.87.
. 실제로 우리 교회의 많은 가정에서 ‘야곱의 식탁’을 통해 의미 있는 변화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지난 5년간의 개인적 경험에 비춰볼 때 가정과 교회에서 보다 쉽게 ‘야곱의 식탁’을 시작하기 위해선 이 책의 홍보대사들을 초청한 집회가 유익하였고, 무엇보다 교인들이 함께 이 책을 읽는 것이 효과적이었습니다. 최고의 선택은 긴 시간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17. 9. 21 ; 제67회 총회 경건회 설교(창세기 48:20, 룻기 4:11)
17. 10. 28 ; 기독교보 제1277호 10면(특집)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74   '야곱의 식탁-총회교육원 편 개정판' 추천사(채영남 목사)    운영자 18-03-18 16 46
73   '야곱의 식탁-총회교육원 편 개정판' Epilogue    운영자 18-03-18 16 52
  야곱의 식탁, 축복과 대화가 있는 가정예배(헌정설교)    운영자 17-09-27 23 813
71   '야곱의식탁-총회교육원 편' 추천사(박신웅 박사)    운영자 17-07-28 16 839
70   '야곱의 식탁, 축복과 대화가 있는 가정예배' Epilogue    운영자 17-07-05 21 1675
69   '교단설립60주년 기념 성경주석' 제63회 총회장 추천사    운영자 17-07-05 21 1037
68   '새벽기도가 끝나는 날, 나의 인생도 끝난다' 추천사    운영자 17-06-04 35 1703
67   주세요 믿어요 감사해요    운영자 17-06-03 17 1687
66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것    운영자 16-12-16 23 1772
65   제66회 총회 유지재단이사장 이•취임식 축사    운영자 16-10-08 33 1778
64   송도제일교회 교역자들이 차린 ‘야곱의 식탁’    주준태목사 16-10-04 18 1960
63   불황을 타개한 인물    운영자 16-09-02 36 1767
62   '야곱의식탁' 추천사(구자우 목사)    주준태목사 16-08-03 19 1235
61   '야곱의식탁' 추천사(강용원 교수)    운영자 16-07-29 16 1152
60   '야곱의 식탁, 축복과 대화가 있는 가정예배' Prologue    주준태목사 15-12-26 46 2313
59   '선한아버지합창단' 창단연주회 축사    운영자 15-11-14 34 1381
58   위대한 결단, 위대한 믿음    운영자 15-10-07 27 1951
57   섬김, 탁월, 순결, 유연    운영자 15-10-07 32 1970
56   강소형교회가 초일류교회입니다    운영자 15-10-07 29 1425
55   고려신학대학원은 고신교단의 심장부인가?(이상규 교수)    운영자 15-10-07 30 1637

1 [2][3][4]
 

Copyright 1999-2018 Zeroboard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송도제일교회/부산광역시 서구 성산길 46(암남동) / 051-248-6071~3 fax 051-248-60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