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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신학대학원은 고신교단의 심장부인가?(이상규 교수)
운영자 님의 글입니다. 2015-10-07 11:54:31, 조회 : 1,542, 추천 : 11

‘고려신학대학원은 고신교단의 심장부다’라는 코람데오 닷컴에 쓴 필자 미상의 5회에 걸친 논설을 읽으면서 주장하는 바가 좀 과하다는 생각을 했으나, 범사에 화의(和議)를 지향하는 나로서는 가능하면 그냥 지나치려 했다. 그러나 이 글이 오늘의 현실, 특히 고신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대학 행정을 일부 책임지고 있는 필자로서 ‘사실’과 ‘현실’을 말하지 않을 수 없어 몇 가지 이견을 말하고자 한다.

비록 ‘고려신학대학원은 고신교단의 심장부다’는 글에 전적으로 공감하지는 않지만, 이 글의 필자는 고신교회에 대한 사랑과 신학교육에 대한 애정으로 쓴 글이라는 점은 인정하고 이 점에 대해서는 경의를 표한다. 그러나 몇 가지 점에서 토론의 여지가 있기 때문에 이 점에 대해 의견을 말하고자 한다. 다소 주관적인 견해로 보일지라도 선의로 헤아려 주기 바랄 뿐이다.

1. 우선 이 글은 신학대학원이 고신대학교의 우산 아래 있다는 점을 매우 애석하게 여기고 통분해 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대학이 강요한 것도 아니고, 정부가 요구한 것도 아니라 우리가 속한 교회가 중의를 모아 결정하고 받아들인 것이기 때문에 지금에 와서 통석해 할 이유가 없다. 신학대학원 과정인 ‘본과’(本科)가 대학에 병설되게 한 것은 우리가 그처럼 떠받드는 한상동 목사가 동의하고, 그 체제 하에서 한상동 목사는 4년간 학장직을 수행했다. 어디 한상동 목사만인가? 홍반식 이근삼 오병세 등 동방박사 세 사람도 다 그 길을 순연한 마음으로 따라갔고 그런 체제하에서 학장도 하고 총장도 하지 않았던가?

고신대학은 1946년 무인가 사설 신학교로 출발해, 학력인가학교로, 그리고 정규대학으로의 발전을 ‘영예’로 여기며 받아들였고, ‘졸업식’이 아니라 ‘학위 수여식’을 거행하게 된 것을 자랑하지 않았던가?

고려신학교가 고신대학이라는 정규대학으로 인가를 받았기에 ‘본과’는 1980년 11월 목회학 석사(M.Div)학위를 수여할 수 있는 ‘신학대학원’ 인가를 받을 수 있었다. 당시 제도로 고신대학이 없었다면 고려신학대학원은 불가능했다. 대학에 속한 신학대학원으로 인가를 받아야 한다고 정부가 강권했던 일이 아니었다.

학력을 인정받는 학위를 위해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자의로 선택한 것이 고신대학 휘하에 ‘신학대학원’을 설치한 것이다. 인가를 얻게 되자 하나님의 은혜라며 감사예배까지 드렸던 일이다. 우리가 원했다면 대학과 무관한 독립된 신학교로 존립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교회의 중의는 대학 휘하의 신학대학원을 원했다. 이것이 우리의 역사이자 현실이다. 그런데 고신대학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며 이제 와서 통석지념을 토로하는 것은 지난 역사를 부정할 때 가능한 일이다.

2. 윗글의 필자는 신학대학원을 불투명한 고신대의 미래에 묶어둘 수 없다고 말한다. 고신대의 미래가 불투명한가 하는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신학대학원이 고신대학 우산 아래 있는 것이 진정으로 문제라면 해결책은 단순하고도 명료하다. 지금 당장이라도 고신대학으로부터 독립하는 일이다. 독립하여 단설신학교(신학대학원)로 출발하면 된다. 그것은 불가능하지 않다. 그 동안 단설대학원 논의가 있었으나 이루어지지 못한 것은 우리의 의지가 부족했거나 롯의 아내처럼 두고 온 그 무엇에 대한 연민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신대학교가 뒤돌아 볼 것 없는 장망성과 같은 것이라면 단설신학교로 출발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지금의 합동신학대학원은 좋은 사례가 된다. 1980년 11월 총신대학에 적을 두고 있던 5명의 교수와 학생들은 교권의 횡포로부터 자유하기 위해 재산과 기득권, 정규대학이 주는 학위를 마다하고 분연히 나와 남서울교회당 한 구석에서 무인가 신학교로 출발했다. 교수들은 ‘재임용 탈락’이라는 불명예를 자취했다. 그런 의지가 있었기에 바른 신학, 바른 교회, 바른 생활이라는 기치가 호소력을 지녔다. 우리에게 이런 신념과 의지가 있다면 단설신학교는 불가능할 이유가 없다.

윗글의 필자가 주장하듯이 ‘강도의 소굴’처럼 불의와 부정의 온상이 된 병원을 살리자고 불과 2년여 기간에 200억 원을 모금했는데, 교단의 심장부를 살리자는데 50억을 모금하지 못하겠는가? 이렇게 하면 교단의 대학을 장망성처럼 취급할 이유도 없을 것이고, 불투명한 미래라는 이름으로 불안해 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주저할 것 없이 신학대학원이 독립하면 된다. 무인가 신학교로 출발하더라도 단설신학대학원으로의 길을 추구하면 그것 자체가 신학대학원의 중요성을 각인 시키는 효과가 있고, 그렇게 하면 굳이 신학대학원을 고신의 심장부라고 주장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3. ‘고려신학대학원은 고신교단의 심장부다’라는 글의 필자는 신학대학원이 고신대학교 휘하에 있는 것이 신학대학원의 위상과 정체성의 심각한 혼란을 초래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신임 신학대학원장이 취임사에서 밝힌 의견이기도 하다. 나는 이 점에 대해 동의할 수 없다. 과연 그런가? 신학대학원이 대학 휘하에 있어서 위상이 격하되고 정체성을 지키지 못했는가? 그런 사례가 무엇인가? 그렇다면 대학이 신학대학원의 정체성을 훼손했다는 말인가?

대학이 신대원의 신학에 대해 영향을 준 일이 있었는가? 신학대학원은 인사, 재정, 행정이 거의 독립적이다. 정체성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교원인사는 신학대학원이 독자적으로 수행해 왔다. 지난 수년 동안 있어왔던 신학대학원 내의 내분, 불화, 모 교수의 입시 부정, 교수의 법정 구속, 해임, 정치적 처신이 고신대학의 우산 아래 있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인가? 신학대학원의 위상이나 정체성의 혼란이 어떻게 대학의 책임인가? 신학적 논란이나 윗글의 필자가 말하는 ‘역사에 사무칠 부끄러움’이 신학대학원이 대학의 우산아래 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인가? 신학대학원의 위상이나 정체성이 대학의 우산 아래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4. 윗글의 필자는 고신대의 미래는 불투명하다고 말하면서 천안 신대원의 이전 주장은 역사의 역주행이라고 말하고 있다.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고신대만이 아니라 지방대학이 다 같이 겪고 있는 현실이다. 고신대의 미래가 밝다고만 할 수 없는 여러 난제가 있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지난 역사에서도 교단 정치의 격랑 속에서 불투명한 60여년의 세월을 지내왔다. 그렇지만 고신대학의 미래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신학대학원이 대학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대학 휘하에 속한 것이 신학의 정체성을 지킬 수 없기 때문이라면 독립 주장이 설득력을 지니지만, 미래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독립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너는 죽더라도 나는 살아야겠다는 소위 니사아활(你死我活) 의식인데, 여기에는 혈육지정의 따뜻한 사랑이 없다. 이런 생각은 선대가 힘겹게 가꾸어 물려준 유산이자 교회의 학교에 대한 책임 있는 처신이라고 볼 수 없다.

현재의 구조에서 대학이 어려움에 처해 있다면 신학대학원이 솔선해 난제를 해결하도록 돕는 것이 지혜로운 일일 것이다. 어떤 점에서 천안 신대원을 매각하더라도 대학을 살려야 신학대학원도 함께 살 수 있는 구조이다.

윗글의 논자가 인식하듯이 대학의 미래가 그처럼 불투명하다면, 신학대학원도 불투명할 수밖에 없는데 대학에 대한 격안관화(隔岸觀火)는 어리석은 일이다. 미래가 불투명해 대학이 위기라면 공멸하기 보다는 차라리 대학을 살려서 신대원도 함께 사는 따뜻한 동행이 더 지혜로운 일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볼 때 천안의 신대원 캠퍼스를 팔아 고신대를 살려야 한다는 주장을 ‘하나님 나라와 그 의’에 반하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과한 일이다.

나는 천안 신학원 부지를 매각해야 한다는 점을 주장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다. 단지 그런 주장 자체를 비신앙적이고 심지어는 우상숭배적인 형태로까지 간주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것이다. 대학과 신대원을 이분법적으로 인식할 것이 아니라 공생의 길을 모색하는 따뜻한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말할 따름이다. 그런 공생과 동행의 의지가 없다면 신학대학원은 우선 무인가 신학교로 속히 독립해야 한다.

5. 윗 글은 제목부터 ‘신학대학원은 고신교단의 심장부’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가 불확실한 대학으로부터 독립해야 하고, 신대원 천안 캠퍼스 매각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거듭 말하지만 나는 신대원의 독립을 반대하지 않고, 천안 캠퍼스의 매각을 주장하지 않는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심장부라고 말하는 신대원의 중요성은 조직이나 구조의 문제가 아니고 캠퍼스나 대지(垈地)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신대원이 행정적으로 대학 휘하에 있다고 해서 심장부가 못될 이유가 없고, 천안 캠퍼스를 팔아 타지로 간다고 해서 심장부가 못될 이유도 없다.

교회나 교회 조직에서 심장부가 되는 것은 영적 권위나 영적 지도력일 것이다. 위의 글을 쓴 이가 말하듯이 “교회의 교사로서 성경해석의 표준을 제시하고 선악을 분별하는 영적 통찰력을 가지고 시대적 정황들을 분석하며, 예언자적인 가르침을 제시하고, 인격과 신앙에서 교회 지도자들의 본이 될 때” 신학대학원은 심장부로 인정받는 것이지, 남들이 인정하지 않는데 자칭 심장부라고 주장한다면 조소꺼리가 되고 말 것이다. 신학대학원이 신앙과 신학 생활에 있어서 영적 리더십을 회복하면 자연스럽게 심장부로 인정받게 될 것이다.

신대원의 위상은 신대원 스스로 정립해야 한다. 12세기의 버나드가 프랑스의 한적한 산골 클레르보에 은둔하고 살았지만 종교적 영향력과 권위를 지니고 있었고, ‘무관의 황제’라고까지 불린 것은 영적 감화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신대원이 교단의 심장부라고 떠들 필요가 없다. 고려신학대학원은 스스로가 자신의 위상을 제고해야 한다는 윗글 필자의 주장은 지당한 지적이다.

6. 고신대학이나 병원, 그리고 신학대학원은 하나님이 우리 교단에 주신 세 기관이다. 물론 역사적 배경이 어떠한가, 기독교 정신에 근거해 경영해 왔는가, 그리고 교회(교단)가 신학교 외의 대학이나 병원을 직영하는 것이 신학적으로 정당한가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토론할 수 있고 논란의 여지가 있다. 교회가 신학교만 직영해야 한다는 오병세 허순길 교수의 주장과는 달리 한명동 이근삼 교수는 기독교대학의 이상을 가졌던 분들이고, 지난 역사에서 후자의 입장이 수용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개혁파교회의 전통을 추수하거나 영역주권원리에 비추어 교회가 신학교만 직영해야 한다고 믿었던 이들도 고신대학의 장(長)이 되거나 장을 생각하지 않았던가! 비록 문제가 있더라도 선대의 합의로 이루어진 현실이 오늘 우리의 모습이다. 따라서 대학과 신학대학원을 이분법적으로 인식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나님 나라와 교회에 유익하게 이용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신학대학원을 대학의 부속기관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를 포함한 교회 구성원들은 교회의 학교인 신학교(신학대학원)에 대한 중요성을 아무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신학교가 살아야 교회가 살고 신학교는 교회의 일부라는 점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신학교(신학대학원)만이 우리가 지키고 보호해야 할 성역이고, 신학대학원의 구조조정을 말하는 것 자체가 불신앙이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에 반하는 것인 양 말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생각한다.

신학교의 중요성은 그 위치나 행정구조에 있지 않다. 도리어 그 ‘중요성’은 교회가 만족할 만한 영적 지도자를 양성해 내는 일에 있다. 구조나 제도 타령만 할 것이 아니라 교단 내외에서 영적 지도력을 보여주면 된다. 그렇게 될 때 가만 있어도 ‘신학대학원은 교단의 심장부’라고 말하게 될 것이다. 파마(破魔)의 도검은 세상으로 향해야 하고, 신학대학원은 우선 무인가신학교로 독립해야 한다. 대학이 신학교의 위상과 정체성의 혼란의 주범이라고 여긴다면.

■ 이상규 교수 / 고신대학교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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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8. 10 ; 기독교보 제1083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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