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도제일교회


















자료실
방송국자료실
 

로그인 회원가입

9월 17일 수요예배 설교_성경구절만 자막으로해 주세요..
정상섭 님의 글입니다. (Homepage) 2008-09-17 18:12:22, 조회 : 1,237, 추천 : 86

2008년 9월 17일 수요설교_중생, 변화의 시작
본문 : 요 3 : 1 - 8

‘질문하면 3분 동안 부끄럽다.  그러나 질문하지 않으면 평생 부끄러워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질문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문구라 할 수 있습니다.  질문을 한다는 것은 참 쉬우면서도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질문이 굉장히 필요하고 효과적이라는 것은 알지만 평범한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에게 질문은 그다지 별로 사용하고 싶지 않는 먼지 묻은 가전도구처럼 있을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사회적 통념이 질문을 하면 순종적인 사람이라기보다 탐구적, 모험적 이미지를 주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삐딱성 내지는 개혁적 진취적 도발적 이미지를 주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은 질문하고 싶어도 꾹 참고 누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문의 효과를 아는 사람은 계속해서 질문합니다.  질문을 하지 않았을 때보다 질문을 했을 때 깨달을 수 있는 사실과 내용들이 훨씬 많기 때문에 질문이 체질화된 사람은 계속해서 질문합니다.  사실 생각해 보십시오.  사물의 이치를 깨닫든지, 어떤 일의 원리를 깨닫고 공부를 하든지, 소그룹 인도법을 배우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빠른 시일 내에 확실하게 배울 수 있는 탁월한 방법은 무엇입니까?  질문을 통해서 배우는 것이 아주 좋습니다.  그러므로 좋은 질문을 하면 좋은 대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질문이 예리하면 정확한 정보와 기가 막히는 대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질문이 정곡을 찌르지 못하고 초점을 빗나가면 원하는 정보도 얻지 못하고 대답도 빗나갑니다.  

오늘 저는 우리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질문을 하려고 합니다.  이 질문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과거와 현재, 미래는 달라질 것입니다.  이 질문에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하면서 대답을 하지 않고 지낼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났다면 모두 다 이 질문에 정당한 자세로 진지한 대답을 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오늘 요한복음 3장 말씀에 근거해서 “중생, 변화의 시작”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따라 우리 교우들에게 세 가지 질문을 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첫째, 누가 거듭나야 하는가?  둘째, 왜 거듭나야 하는가?  셋째, 어떻게 거듭날 수 있는가?  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해 성경에 근거한 확실하게 대답을 하시기 바랍니다.  아주 중요하고 진지한 우리의 인생과 영원한 삶을 위한 본질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이 질문에 대한 분명하고 정확하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한 사람도 흐리멍덩하게 대답하지 않고, 분명히 주님의 말씀에 근거한 믿음의 대답을 하시고 결단하면서 돌아가는 이 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첫 번째 질문을 합니다.  누가 거듭나야 할까요?
1절에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니고데모는 어떤 사람입니까?  요즘 말로 하면 니고데모는 미국의 아이비리그 출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최고 교육을 받았습니다.  유대의 최고 의결기관인 산헤드린 공회의 회원이었습니다.  70명 회원 중에서도 도덕적으로 높은 수준에 있어서 존경받는 선생이었습니다.  보편적인 사회적, 도덕적 기준으로 볼 때 니고데모는 흠 잡을 것이 없을 정도로 훌륭하고 출중한 인물이었습니다.  모두가 부러워하고 닮고 싶은 롤모델의 위치에 있었던 사람이 니고데모였습니다.  
그런데 니고데모에게 어떤 문제가 있었을까요?  니고데모의 문제는 무엇이길래 예수님께서 그를 보시자마자 너는 반드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셨을까요?  니고데모의 행동과 말을 보면 그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2절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니고데모는 언제 예수님을 찾아왔습니까?  밤에 찾아왔습니다.  왜 밤에 찾아왔을까요?  요즘처럼 낮과 밤의 차이가 별로 없는 경우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당시 유대는 밤에 등불이나 횃불 없이 이동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러니 사람을 쉽게 알아보기 힘들지요.  니고데모는 산헤드린 공회의 회원이기 때문에 저명 인사였습니다.  유대의 지도층인 이 사람이 이제 겨우 30대 초반의 젊은 나사렛 예수를 대낮에 찾아가면 사람들이 다 알아보지 않겠습니까? 자신이 종교지도자인데 이제 새파랗게 젊은 선지자를 찾아간다는 것이 체면 문제도 있었고, 사회적으로 불이익을 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런 다음에 2절을 보시면 예수님에게 대뜸 뭐라고 질문합니까?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자기 생각을 최대한 감추면서 말을 하지요.  내 생각에는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입장에 대한 스스로의 책임을 최소화시키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많이 배운 사람이 참 다르지요.  말을 하는데 어떻게 합니까?  자기가 빠져 나갈 여지를 남겨 둔 상태에서 예수님에게 묻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지금 대화를 나누는 분이 누구십니까?  사람을 창조하시고 사람의 중심과 속을 꿰뚫어 보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아니십니까?  이 장면을 보면 속담이 생각납니다.  도사 앞에 요롱 흔든다,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다.  예수님 앞에서 뭘 숨길 수 있습니까?  자신의 의도와 계산을 숨기면서 질문을 하고 있는 것이죠.  

니고데모는 외형적으로 사회적으로 문제가 없을 정도로 인품과 실력이 출중해서 빠질 것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실상 그의 내면을 들여다보니까 자신의 체면 때문에 예수님에게 담대하게 나아오지 못합니다.  세상의 지혜와 처세술에 익숙해지고 길들여져 있어서 오히려 예수님을 마음껏 믿지 못합니다.  거듭나지 못하도록 만들어 버립니다.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외형적으로 볼 때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한 직장과 직업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뭐 하나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일수록 그의 내면을 한 꺼풀 벗고 들어가 보세요.  온갖 쓴뿌리과 잡초가 무성합니다.  견고한 진에 사로잡혀서 영적으로 변화되기를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영적 어두움에 사로잡혀 살아갑니다.  왜 이런 영적 무지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살아갈까요?  그 해답이 롬 3 : 23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라고 했습니다.  

한 사람도 예외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모든 죄인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죄인이 아니라면 예수님이 필요 없지만 죄인이기 때문에 거듭나야 합니다.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에 모두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가 필요한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에 모두가 거듭나야 합니다.  거듭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두 번째 질문입니다.  왜 거듭나야 할까요?
3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여기서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는 말은 유대인들은 쉽게 이해했습니다.  이것을 쉬운 말로 표현하면 무엇일까요?  요 3: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래서 3절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구원을 얻을 수 없느니라”

왜 모든 사람은 거듭나야 할까요?  니고데모가 유대인의 지도자이면서 산헤드린 공회원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칭찬과 존경과 추앙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 기쁨이 하늘나라의 기쁨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에게 받는 명성과 인정이 좋아야 그 기간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의 기간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이 땅의 것을 누린다고 하더라도 길어야 100년입니다.  아무리 이 땅의 것이 좋다고 하더라도 영원한 삶에 비한다면 조족지혈 밖에 안 됩니다.  너무나 짧은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가져도 우리가 거듭나지 않아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면 얼마나 비참하겠습니까?  모든 기쁨을 다 가져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기쁨이 없다면 얼마나 슬프겠습니까?  모든 칭찬과 명성을 이 땅에서 다 얻어도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면 그것이 무슨 칭찬과 명성이 되겠습니까?  모든 세상의 권력과 권세를 다 손에 움켜쥐며 온 인류를 쥐락펴락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기쁨이야말로 그 어떤 세상의 기쁨과 바꿀 수 없고, 세상의 것과 바꾸고 싶지 않는 참된 기쁨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참된 기쁨과 우리를 가슴 떨리게 하는 행복은 우리를 위해 주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예비해 두셨다는 사실입니다.  믿으십니까?  세상의 어떤 것으로 저 영광스럽고 감격적인 하나님의 나라와 비교할 수 있습니까?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이 기쁨과 행복이 넘치는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해 주시기 위해서 너는 반드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세 번째 질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거듭날 수 있습니까?  
5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사람이 어떻게 하면 거듭날 수 있을까요? 거듭남의 비밀은 무엇일까요? 물과 성령으로 나야 한다고 말합니다.  물과 성령으로 나야 한다는 말은 무엇을 뜻할까요?  우리는 이 말씀을 쉽게 이해할 수 없지만 니고데모는 이 말을 이해하는 것이 쉬웠습니다.  왜 그럴까요?  니고데모는 구약에 능통한 유대인 지도자였습니다.  늘 유대 백성에게 구약을 가르친 성경교사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셨을 때 니고데모는 구약의 어떤 구절을 인용하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인용하시는 말씀은 에스겔 36 : 25 - 27절입니다.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물'과 '성령'의 개념을 다른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물은 외적인 세례를 가리키는 것이고, 이 세례를 받지 아니하면 성령으로 세례를 받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잘못 되었습니다.  헬라어 원문을 보면 ‘물 곧 성령’으로 번역해야 하고, 서로 같은 개념이라고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물은 성령의 특성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종교적인 의미에서의 물의 역할을 말합니다.  물이 깨끗이 씻는 역할을 하듯이 성령으로 깨끗이 씻음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말씀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무엇입니까?  이 물 곧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 속죄함을 받고, 마음이 새롭게 되는 구약의 약속이 지금 네가 보는 앞에서 나를 통해 성취되고 있다, 그 약속의 말씀이 나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의 핵심은 성령을 받기 위해 성령을 사모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네가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리던 메시야 시대가 지금 임했고, 네가 그렇게 사모했던 왕, 네가 그렇게 기다렸던 메시아, 그 분이 바로 나다, 그 메시아이신 예수님이 지금 너의 눈앞에 있고 그분이 지금 임재해 계신다,  그 예수님을 믿으라!  그 예수님을 바라보라, 그 예수님을 의지하라!’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으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라, 그러면 너는 반드시 거듭날 것이다!  너는 반드시 거듭날 수밖에 없다!  너는 반드시 거듭나야 한다!’  이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중생을 경험하셨습니까?  새롭게 태어나셨습니까?  누가 질문해도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는 확신을 가지고 계십니까?  이러한 중생을 체험할 때에 우리 삶이 비로소 변화가 일어납니다.  변화를 결단하고 노력한다고 변하는 것이 아니라 중생을 하면 삶이 변합니다.  좀 부족하고 연약해도 중생을 받으면 삶이 변합니다.  가치관이 달라집니다.  안목이 달라집니다.  생각이 달라집니다.  삶의 패턴이 달라집니다.  습관이 달라집니다.  인생이 달라집니다.  예수 믿고 안 변하는 그게 이상한 것이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믿는 그 순간부터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변화는 중생 받은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증거입니다.

속사람이 변화되었기 때문에 행동이 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속사람이 변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결심을 해 보십시오.  얼마 가지 않아서 또 예전으로 돌아갑니다.  사람이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은 상태에서 성경공부를 하고, 예배를 드리고, 봉사를 하고, 온갖 사역을 해 보십시오.  자신도 힘들고, 주위 사람들도 힘들고, 복음과 하나님의 나라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진지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 중에 엉터리 신자부터 먼저 거듭나야 합니다.  내가 정말 주님을 믿고 있는가?  난 정말 거듭났는가?  난 주님의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가?  

사랑하는 여러분,  중요한 것은 거듭나는 것, 중생을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귀가 아프도록 설명을 듣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거듭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듭나는 사건이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한 사람도 니고데모와 같은 사람이 없기를 바랍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반드시 거듭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가 오늘도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이 자리에 성령으로 임재해 계십니다.  이 시간 모든 것이 다 준비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서 모든 좋은 것을 다 제공해 주셨습니다.  이제 한 가지만 하시면 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시오.  주님이 죽으신 것은 저와 우리 모든 교우들의 죄를 씻기 위해서 죽으신 것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하십시오. “참 좋으신 주님, 나는 죄인입니다.  저에게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저에게 구원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나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주님 나를 도와주시옵소서”  이렇게 한 마디만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우리 모두를 반드시 변화시켜 주시고 거듭나게 해 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오늘 저는 우리 교우들에게 세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확실히 찾으셨습니까?  오늘 성령께서 우리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그 음성과 질문에 오늘 이 약속의 말씀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귀한 거듭남의 은혜를 체험하면서 삶의 참된 변화, 놀라운 주님을 닮아가는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시는 저와 우리 모든 교우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Copyright 1999-2019 Zeroboard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송도제일교회/부산광역시 서구 성산길 46(암남동) / 051-248-6071~3 fax 051-248-6072